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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미신/느헤미야묵상

느헤미야를 꿈꾸며 8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직 기다리십니다. 지금 우리도 역사에서 무언가 배울게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9:16]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9:17] 거역하며 주께서 저희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9 : 18] 또 저희가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이르기를 이는 곧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 하여 크게 설만하게 하였사오나
[9 : 19] 주께서는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저희를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사 떠나게 아니하셨사오며
[9 : 20] 또 주의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로 저희 입에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의 목마름을 인하여 물을 주시사
[9 : 21] 사십 년 동안을 들에서 기르시되 결핍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사오며
[9 : 22]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저희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저희가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아시다시피, 유다인들은 그렇게 여러 차례 은혜를 입고, 경고를 받아도 여전히 타락했습니다. 심지어는 이방의 밥이 되기까지 당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민족이 그 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아주 죽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9 : 31] 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저희를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그런고 이제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운동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정신을 차립니다. 그 정신 차렸음을 나타내는 증표로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모두 도장을 꽉 찍었습니다. 서명을 한 게지요. 우리가 먼저 언약을 세우고 지키겠노라, 하는 약속에 말입니다. 여기서 레위인에 대해 잠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백들과 제사장이 서명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레위인은 왜 한 것일까요? 바로 레위인들은 각 지방에서 선생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들이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선생이 바로 세우면, 교육이 바로 세워지면 그 나라에 희망이 생깁니다.

[9 : 38]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

이제 백성들이 나서서 약속을 합니다. 이방 족속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약속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약속들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유다주의의 시작입니다. 당시에는 구원의 역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혈통의 순수성 유지나 각 종 제사의식 등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지금 중동지방이 세계의 화약고라고 한답니다. 그 화약고는 바로 이 유다주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 언약을 인정하지 않는 이 유다주의는 결국 세계를 불안하게 하는 전쟁의 씨앗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누구든지(민족이나 성별이나 피부색에 차별 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 아닙니까? 이 진리를 거부하는 유다주의는 평화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뜻(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지요? 무슨 복이냐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입니다)과는 관계없이 세상을 어둠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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