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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꼬라지/경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와 여성경제활동인구 1,000만 명 시대

뻔한 이야기 한번 해보자.

참여정부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목표로 제시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1만 달러시대에 진입한 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 경제가 재벌 중심의 부실을 바탕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왔고 국민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책 역시 재벌 경영의 투명화와 외환위기로 나타난 빈부격차 심화의 해소 등에서 찾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정치인들이란 게 원래 상식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여성을 경제현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2만 달러 시대를 여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한 경제 잡지는 최근호에서 여성경제활동인구 1,000만 명 시대가 도래 하였다는 내용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그것이 언뜻 듣기에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하다는 말이어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한 발짝 다가간 것 같다. 정말 그럴까?

그 잡지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여성 임금근로자의 62%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수준도 남성의 57%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재취업을 원하는 주부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취업문은 글자 그대로 바늘구멍이어서 많은 주부들이 창업의 길을 두드리기도 한다. 그래서 여성취업자의 14%가 무급 가족종사자라고 한다.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급여 없이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대졸이상의 여성들조차 경제활동참가율이 57.1%로 OECD 회원국 평균인 77.9%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최하위라고 한다.

이상의 현상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는 많은 여성들이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별도의 보수 없이 노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대부분의 근로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그렇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직장 여성의 상당수가 결혼 등을 이유로 일정 기간 직장을 떠났다가 재취업에 나서고 있으나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력이 있는 여성들은 창업을, 그렇지 못한 여성들은 비정규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기위해 여성이 자기 일을 갖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시대의 유행어가 되어버린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대부분의 직장에서 일반화 되어버린 고용불안 때문에 전통적으로 가장 역할을 하던 남성노동자들에게 가족의 생계를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거기에 사교육을 필요 없게 만들겠다며 시행한 여러 가지 교육정상화 대책이 보수층의 교묘한 회피수단(논술형 본고사, 통합교과형 논술 등)으로 오히려 사교육비를 급팽창시키면서 가정경제가 피폐화된 까닭이다. 현재 여성들의 취업상태나 경제활동이 우리 국민소득을 2만 달러로 끌어 올리는 경제성장 견인차의 모습이 아니라 한계 상황에서 직업전선에 내 몰리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우리 경제의 활력소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복지제도를 여성의 경제활동을 중단하게 만드는 장애물의 제거에 초점을 두고 시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미혼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진입한 후, 결혼, 출산이나 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떠났다가 아이들이 일정하게 성장한 후 부닥치는 남편의 고용불안이나 사교육비 부담 등의 이유로 다시 경제활동에 나설 때는 정규직으로 재진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일단 경제활동을 시작한 미혼 여성들이 직장을 떠나지 않게 만드는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제도로는 출산휴직 뿐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수년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육아휴직 후 복직할 때도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보육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여성들의 직업 안정성은 증가하지만 취직자리의 순환이 크게 떨어져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한 도요타자동차의 경우에도 정규직의 해외파견 등으로 발생한 일시적인 공백은 비정규직으로 메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규직의 직무와 비정규직의 직무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어 직무와 관계없이 오직 정규직 여부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우리나라 기업들과 다르다. 직장 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를 도입하되, 직무범위가 분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직무범위를 정하는 기준도 숙련도와 같이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그리고 휴직기간 동안 생긴 공백 중 일정 비율은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중에서 능력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메울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뿐 아니라 갓 사회에 진출한 신입 정규직과 달리 능력 검증 절차를 거친 직원채용이라는 장점도 있다. 한편 오랫동안 휴직한 후에 복귀한 정규직은 직무능력이 크게 낮아질 수 있으므로 복귀 전 재교육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 나타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의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부디 여성경제활동인구 1,000만 명 시대가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고 정말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여는 견인차가 되기를 바란다. (2005.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