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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꼬라지/경제

농민이 겨우 지켜온 나라, 대통령이 나서서 망쳐서야 -곡물파동의 진실-

농민이 겨우 지켜온 나라, 대통령이 나서서 망쳐서야

-곡물파동의 진실-

  요즘 곡물가격이 폭등하면서 전 세계에 걸쳐 1억 명 정도의 사람들이 식량부족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농민들의 투쟁으로 쌀시장 개방이 늦춰져 이런 위기를 비켜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부는 국민을 죽이려 들었으나 농민들이 살린 것입니다.

  아시아, 아프리카에선 식량폭동이 일반화되었으며, 유럽도 식량걱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이집트처럼 세계 최대 쌀 생산국은 물론이고, 원유가 풍부해 부자나라인 아랍에미리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필리핀은 이미 군대를 투입하였으며, 스리랑카도 농업입국 캠페인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엔이나 국제기구들은 식량위기가 미국의 금융위기나 유가폭등을 무색하게 만드는 지구촌 안보의 최대 위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촌 안보의 최대 위협, 곡물파동

  보리, 밀, 옥수수, 콩 등은 지난 1년 동안 50%-100% 정도 올랐다고 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쌀입니다. 주로 아시아 국가들이 주식으로 사용하는 쌀은 1년 전보다는 2배, 2001년보다는 무려 5배나 올랐습니다. 이런 상황에 주요 쌀 수출국인 중국, 인도, 베트남 등이 쌀 수출을 통제한다고 하자 쌀값은 더욱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는 쌀값이 앞으로도 2년 동안은 더 오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곡물가격이 폭등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중국, 인도와 같은 신흥경제대국들의 쌀 소비가 늘어난 탓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기상이변으로 수확량이 줄어든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셋째는 바이오연료를 만들기 위해 옥수수를 전용하고 있기 때문에 식량이 줄어든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부분적인 이유는 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렇게 급등할 이유는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최근 한 보고서(‘국제 곡물 수급요인 분석과 향후 가격전망’)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옥수수가격을 예로 1975년부터 2007년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현재 적정가격이 1부셀(27.2kg)당 4.21달러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실제 가격은 지난 3월 5.59달러였으며, 그 후로도 계속 폭등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바로 현 가격의 25% 정도는 투기자본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투기자본이 바로 폭등사태의 주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곡물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우선 옥수수의 경우에는 식량과 에너지 사이의 갈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에너지 자립도 향상을 위해 옥수수에서 에탄올을 추출하여 휘발유 대신 사용하겠다는 이른바 바이오연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옥수수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일찍부터 이런 움직임이 식량난을 부추길 것이며, 식량을 자동차연료로 사용한다고 비난해왔습니다.

  밀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것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세계 최대 쌀 생산국가 중 하나인 이집트의 폭동이나 비옥한 농토를 가진 스리랑카가 곤경에 빠진 이유가 바로 밀 때문인데, 이 상황은 스리랑카의 라자팍세 대통령의 말 속에 잘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매우 비옥한 토지를 갖고 있는데도, 수입밀가루가 처음에는 무료로 나중에는 외상으로 제공되는 과정에서 밀에 중독돼왔다.” 결국 거대 곡물기업들과 결탁한 몇몇 국가들이 원조를 통해 이런 나라들의 식생활습관을 바꾸어 버렸고, 어리석은 그 나라들은 밀가루 빵에 의존하게 되어 이제 밀가루 값이 오르자 폭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쌀 가격이 오르는 것은 지구온난화와 깊은 관계를 갖습니다.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은 여러 가지 형태로 농사에 영향을 주는데,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쌀의 주 생산지가 삼각주 저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의 메콩강 삼각주와 같은 곳은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곧 물에 잠기게 됩니다. 여기에 중국, 인도 등의 소비량 증가도 한몫 거들었습니다.

곡물별로 폭등의 배경이 조금씩 달라

이렇게 곡물가격이 상승할만한 이유가 조금씩 다르지만 거기에는 공통된 숨은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전 세계 곡물 공급의 70% 정도를 몇몇 거대 곡물기업이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어 가격 조정은 정말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투기자본이 조금만 가세해도 금방 통제불능의 상황에 빠져버립니다. 이들 두 집단은 모든 것을 오직 돈벌이 수단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기근으로 한해 1억 명의 목숨이 위협받는 현실조차 돈벌이의 좋은 기회로 인식할 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이런 현실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으며 여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숨겨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여 매우 낮은 식량자급률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다행히 그동안 정부가 농산물시장 개방을 추진할 때마다 농민들이 격렬한 반대로 주식인 쌀시장 개방만은 막아왔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주식은 아직 이 세계를 조종하려는 두 집단의 마수에서 비켜나 있습니다.

정부가 위협하는 국민의 생존권을 농민이 보호하는 아이러니


그러나 정부는 틈만 나면 쌀시장 개방을 추진하여 왔고, 결국 조금씩 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은 쌀시장 전면개방에 대비한다는 명분 아래 쌀농사 직불금 규제강화와 목표가격 인하로 농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쌀 재배면적은 매년 2~3%씩 감소하여 지난 90년 이후 사라진 논면적이 29만4,000㏊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곡물시장 개방을 주장하는 것은 사실은 소수의 국제적인 거대 곡물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 국민의 생존권을 넘겨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미 우리는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데, 아무 생각 없는 이 대통령은 미국에 가더니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두 집단의 이익에 충실한 결정입니다. 옥수수 가격을 통해 사료 값을 올려서 한우 사육농가의 채산성 나빠지게 한 후 쇠고기 시장을 넘겨받습니다. 한우 육성산업이 완전 붕괴되면 다시 쇠고기 가격을 올립니다. 스리랑카 대통령의 한탄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웃는 이대통령

  이들의 다음 시나리오는 무엇일까요?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곡물파동을 빙자해서 유럽과 일본, 한국 등에 유전자조작 작물을 허용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신문은 전통적으로 투기자본의 옹호자 역할을 해온 신문입니다. 거대 곡물기업들과 유전자조작 종묘회사들, 그리고 여기에 가세한 투기자본의 이익을 위해 어떤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지 조금 보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를 확인이라도 해주듯 지난 2월에는 우리나라의 식료품 대기업들이 공동으로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수입하여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비옥한 농토를 충분히 갖고 있으면서도 뒤늦게 농업을 육성하겠다고 발버둥치는 필리핀이나 스리랑카처럼 되기 전에 쌀시장을 개방하겠다는 한미FTA 등 자유무역협정을 수정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그런데도 부시에게 쇠고기시장을 전면 개방해 주었으니 이제 한미FTA를 빨리 승인하자고 말하는 이 대통령을 보니 참으로 미래가 암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