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을 여행할 때면 늘 그 나라의 역사 속에서 지혜를 얻곤 합니다. 최근에 과거의 여행지들을 떠올리며 종교문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종교를 이야기 하는 것은 종교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고 종교가 다른 세력에게 악용되는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특정 종교를 가진 분들의 오해가 없으시길 부탁드립니다.
태국은 불교국가입니다. 윤회사상의 영향으로 국민들은 여유가 있고 너그럽습니다. 다음 세상에 더 좋은 것으로 태어나면 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겁내지 않고 아파도 병원에 가는 이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하거나 분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태국은 오직 인구의 90%가 넘는 국민들에게만 해당하는 태국입니다. 인구의 9% 정도에 불과한 왕족, 귀족, 종교지도자들이 대부분의 부를 장악하고서 국민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태국에서 불교 혹은 윤회사상이란 지배자들이 다수의 국민들로 하여금 평등개념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악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는 잘 아시듯이 힌두교 국가입니다. 많은 인도 여행자들이 지적하듯이 인도사람들을 보면 정말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이 겉보기 평화 속에 숨긴 역사를 지나치면 안 됩니다. 인도는 우리나라처럼 아주 오랫동안 외국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은 나라입니다. 침입자가 전쟁에 승리하면 자신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국민들에게는 과거 지배자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계급체제를 강요하기위해 힌두교를 은근히 권장한 탓에 지배계급만 다른 사람들로 바뀔 뿐 국민의 삶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전쟁은 지배계급만이 하는 것이고 따라서 외적을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힌두교는 국민들이 비참한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악용되었습니다.
과거 제정 러시아에서 정교회는 왕정체제와 결탁하여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아직도 이 시절에 만든 황금 성경이 여러 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 국민들은 매우 피폐한 생활을 하였는데도 종교지도자들은 왕족이나 귀족들과 어울려 호화로운 생활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러시아 공산 혁명의 원인중 하나가 되었고 공산주의와 기독교 사이의 악연이 시작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기독교 복음은 비참한 한국 민중의 삶에 눈물 흘리던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한국 민중의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각 지방으로 흩어져 병원과 학교를 세워 현대 한국을 건설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미션스쿨과 기독교병원들이 그렇게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이런 역할이 국민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고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널리 받아들여진 이유였습니다.
인구대비 교회밀도가 가장 높아 기네스북에 올라야 한다는 도시가 있는 한국의 기독교 아니 전국 방방곡곡에 자리 잡은 종교들이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진리의 종교입니까? 마약의 종교입니까? 평화의 종교입니까? 갈등의 종교입니까? 희망의 종교입니까? 물질의 종교입니까?
(2007.06.22, 2012.1.14 부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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