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자동차의 최종 목표는 전기자동차(EV, electric vehicle)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마차에 증기기관을 얹어 사용했던 것을 제외하고 말한다면 역사가 가장 오래된 자동차가 바로 전기자동차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기자동차는 1873년 영국의 R. Davidson이라는 사람이 만들어 실용화했는데, 그 후 휘발유엔진이 급속도로 발전하자 사라졌었다.
전기자동차가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지난 1990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가 완전 무공해자동차(ZEV, zero emission vehicle)를 도입하는 정책을 법제화하면서 부터이다. 이 규정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는 메이커들에게 1998~2000년에는 전체 판매량의 2% 이상을, 2001~2002년에는 5% 이상을, 2003년부터는 10% 이상을 ZEV로 판매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였다. 물론 이후 몇 차례 완화되었지만 기본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다시 등장한 전기자동차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이 도입된 것은 GM이 EV1 이라는 이름의 전기자동차를 1990년 1월 LA모터쇼에서 공개하자 성공 가능성을 확신한 탓이었는데 이 차는 사실 운행할 수 없는 무늬만 자동차였다. 아무튼 이때부터 모든 자동차메이커들은 전기자동차가 대세라고 판단하고 여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아자동차가 선두로 연구에 착수하였고, 1993년 대전엑스포에 전기자동차가 등장하는 등 한 때 큰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도 제주도와 하와이에서는 현대자동차의 산타페 전기자동차가 시험운행 중이다.
사진1: GM이 EV1의 후속으로 내놓은 신개념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 볼트는 리튬 이온 배터리로 작동하다가 전기가 부족할 때는 휘발유엔진을 돌려 전기를 만들어 항속 거리를 늘린다. 충전은 차에서 코드를 뽑아 110볼트 콘센트에 꽂으면 된다. 완전히 충전하는 데는 6시간 정도 걸리며 완전히 충전된 볼트는 도심에서 달릴 경우 전기만으로 40마일(약 64km)을 달릴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주변에 전기자동차가 안 보이지?
그런데도 전기자동차가 아직도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순수 전기자동차는 배터리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연기관 자동차와 경쟁 상대가 못된다. 1회 충전으로 겨우 40마일(64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자동차는 자동차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둘째는 전기자동차가 진정한 의미에서 친환경적이 되려면 전기를 얻는 과정도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화력발전이나 원자력발전으로 얻는다면 도시환경은 크게 개선되지만 전기 소비량은 급격히 늘어 발전을 하는 곳에 공해가 더욱 증가하는 불균형이 발생한다.
세 번째 문제는 충전소와 같은 인프라의 문제이다. 이미 오랜 세월 자동차가 보급되었기 때문에 주유소라는 시스템을 통해 운전자들은 손쉽게 연료를 공급 받을 수 있지만 전기자동차가 운전 중 방전되었을 때 충전할 수 있는 인프라는 새로 구축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경쟁이 되는 자동차 만들기?
아니면 경쟁이 되는 용도의 자동차 만들기?
첫째 문제에 대한 해결은 다양한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다. GM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 중 절반은 근무지에서 왕복 40마일 이내의 거리에 산다고 한다. 그렇다면 볼트를 가지고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는 데는 불편이 없다. 미국처럼 가구당 2대 이상의 자동차를 보유한다면 출퇴근용으로 추가 구입하는 자동차는 전기자동차가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기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가능하다. 역시 볼트가 택한 방법으로 충전한 배터리가 방전되면 자체 휘발유엔진으로 발전하여 충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휘발유 하이브리 자동차보다 더 친환경적이지만 일반자동차로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요즘 순수 전기자동차 추세는 경차를 전기자동차로 만드는 것이다. 20여 년 만에 겨우 경차를 전기자동차로 만들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필자는 90년 당시 전기자동차가 일반 자동차를 대신할 수는 없고 근거리용자동차(골프장용 카트, 공원이나 공항 내에서 운용하는 자동차 등)로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근거리 수송장비와 선박, 농기계, 건설장비 등은 그 운행대수가 작지만 배출가스 기준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전체 대기오염의 14%(자동차는 53%)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대기오염원이다. 캘리포니아주도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1998년 근거리수송용 전기자동차(NEV, neighborhood EV)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림2: 캘리포니아주가 1998년에 비로소 도입한 근거리수송용 전기자동차. 사진은 미국 e-ride Industries의 EXV4모델로 4인승이다.
완결된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진정한 친환경자동차가 아니다
두 번째 문제점에 대한 해결에 관심을 갖는 기업은 일본의 혼다이다. 혼다는 가정에너지스테이션(HES)이라는 개념을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는데, 이는 가정에서 태양광으로 발전하여 제조한 전기나 수소를 자동차에 충전하여 사용하는 전기자동차 혹은 수소연료전지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나의 완결된 시스템을 개발 보급함으로써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택하는 방법은 도로 주변에 충전소를 설치하는 한편 가정용 전기로 충전 가능한 전기자동차를 만든다는 것이다. 가정용전기로 충전하는 것은 결국 배터리와 충전기의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처럼 고층아파트 보급률이 높은 나라에서는 별로 실효성이 없는 방법으로 보인다.
전기자동차는 친환경자동차의 출발역이자 종착역
그런데 요즘 새로운 친환경자동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자동차나 연료전지자동차의 핵심 기술들은 대부분 바로 전기자동차 기술에서 나온 것들이다.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자동차를 만든 계기가 바로 전기자동차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방법의 하나로 시도했던 것이고, GM이 연료전지자동차를 만들려고 시도한 이유도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용량을 늘리려는 연구에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전기자동차는 친환경자동차의 종착역일 뿐 아니라 출발역이기도 하다. (2007.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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