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권으로 좋아하는 사람 둘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면 참 행복한 글 읽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독서의 즐거움에 대해 말했던 모양이다. <사랑의 승자, 오동명 지음, 생각비행>은, 오래 전에 읽었던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강준만 지음, 개마고원>처럼, 바로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전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저자가 기자시절 찍어두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의 빛바랜 사진들에 김대통령이 쓴 옥중서신과 자신이 인터뷰했던 내용 등을 인용하여 사진에 댓글을 붙인 사진첩이다. 김대중 대통령이야 모두들 잘 아는 분일 것이다. 그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다. 대부분 그분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분을 좋아하게 된 것은 대통령이 된 다음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나는 1997년 대선 당시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당시 대선구도에서 내가 표를 줄만한 후보는 김대중 씨 밖에 없었는데, 나는 그분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장을 신청해 선거일에는 해외에 체류 중이었다. 나중에 나도 알게 되었지만 이 책에서 오동명 씨는 그것이 모두 언론의 이미지 조작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나는 그분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그분에게 마음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남북한을 가릴 것 없이 독재자들은 남북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적절히 활용하였고, 이를 빌미로 국민을 압제했고 심지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젊은이들을 죽이는 빌미가 되었다. 바로 남북관계의 개선은 이런 암울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며, 이 땅에 다시 독재자가 발붙일 여지를 크게 줄이는 일이었다. MB정부가 들어선 이래 제일 먼저 이뤄진 일이 남북관계의 악화이며 곧이어 방법만 다른 독재정부가 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오동명 씨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인터넷 검색창에서 ‘오동명’이라고 쳐보면 주르륵 올라온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아마 중앙일보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사건 때문일 것이다. 지난 1999년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 언론사 탈세혐의로 검찰에 소환될 때 중앙일보 기자들이 신문사 앞에 도열하여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사내 대자보에 언론의 책임에 대해 글을 쓰고 ‘이러고도 기자냐’라는 자괴감으로 글자 그대로 사표를 집어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난 그 사건이 있은 후 다른 일로 그를 알게 되었고 그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이 책에는 고 김 대통령의 여러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저자의 말대로 김 대통령을 호남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대한민국 사람으로 바라봐 달라는 소망이 담긴 사진들이다. 그래서 김 대통령이 하품하는 사진이 유난히 많다.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그의 고단한 인생이 담긴 것이리라.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김 대통령의 인생을 폄하한다는 사실에 저자는 분개하는 듯하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더욱 재미있다. 한 사람은 민주주의의 긴 여정에 고단한 하품을 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계속 곁눈질이다. 그래서 저자는 더욱 더 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리운지 모른다. 지금 MB정부가 끊임없이 획책하는,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 앞에 여전히 고 김 대통령의 역할이 그리운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는 무작정 그분을 변론하지 않는다. 아쉬웠던 기억이나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언급한다. 무엇보다 그가 국립현충원에 전임 독재자들과 나란히 묻혀있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한다. 현충원의 무덤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518묘역의 민주영령들이나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대통령과 나란히 누워 다시 위기에 처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외치길 기대하고 있다.
저자가 책의 끝에 쓴 글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마친다.
“우직했던 당신의 팔십 평생이 에이도록 그립습니다. 당신의 행동하는 양심이 또 아리도록 그립습니다. 진정한 친구인 국민, 그래요, 대중 곁으로 돌아오셔서 매일매일 우리와 함께하시면 안 될까요?”
(201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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