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반대의견에 귀를 닫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이명박정부의 행동은 사실 그것 자체로 폭력입니다. 정부의 결단은 다양한 가능성과 많은 의견을 청취한 후에 비로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시간을 끌면 반대의견 때문에 실행할 수 없다며 조급증을 보이는 것은 이런 결단의 뒤에 다른 목적이 감추어져 있다는 심증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폭력은 결국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폭력전염병으로 발전한다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여름의 비정규직 고용대란설 사태를 기억해 봅시다. 사실 기업의 간부를 지내본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것이 기간을 연장하는 것에 비해 전혀 이득이 없습니다. 업무를 이해시키고 숙달시키는데 보통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걸립니다. 2년마다 해고와 신규채용을 반복하면 그 기업은 막대한 교육비를 낭비하여 저임금의 장점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부가 잘못된 판단으로 과장하면 권력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들은 구색맞추기식으로 해고하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폭력의 전염이 일어납니다.
어제(11/11)는 수업을 하는데 수업시간이 한창이었던 11시 5분전쯤부터 몇몇 학생들이 학생회관 앞에서 밴드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맞은편에 있는 내 강의실은 건물이 낡아 방음이 전혀 안 되기 때문에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의 소음이었습니다. 나는 조교에게 본부에 연락하여 소음을 중단시켜 달라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학생들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2시간 정도를 계속 연주했습니다. 강의실에서 바라보니 듣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지요. 결국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수백 명의 수업을 방해한 것입니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고 폭력이라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사실 이들에게 그것이 폭력이라고 느끼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이지요. 수업시간을 따지지 않고 계속되는 학교안의 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익숙해진 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남에게 끼치는 피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수밖에요. 용산에서 6명이 죽었어도 살아남은 시위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어 중형을 내리는 판결을 보고, 절차는 불법이어도 이미 통과된 법은 합법이라는 헌재의 판결을 보며, 또 미군기지의 비행훈련 소음 때문에 툭하면 몇 분씩 수업을 중단하는 것이 일상화 된 그들에게 그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겠습니까?
오래 전 미국에 갔을 때 겪은 일입니다. 스톱이라고 쓰인 팻말이 서 있는 곳은 누구든 먼저 도착한 사람이나 차가 우선 통과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생활에 익숙한 나는 이게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4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는데 차들이 계속 와 건너지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갑자기 길을 건너갑니다. 그래서 나도 얼른 따라서 건너갔는데, 한국사람답게 사거리에 다가오는 차를 피해 건너가려고 뛰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건넌 후 그 청년에게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길을 건너는 것은 당신의 권리인데 왜 뛰느냐는 것이지요. 나는 여전히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뛰어서 건넙니다. 달려오는 차가 속도를 줄이리라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 밤에 아내와 함께 가까운 빵집에 빵을 사러 나갔습니다. 동네 길은 대부분 골목길이어서 좁은데다가 길 한편으로는 주차된 차들이 늘어서 있어 골목길조차 사람들은 걷기가 불편합니다. 그런데 뒤에서 승용차가 다가옵니다. 좁은 길에서 주차된 승용차가 옆에 붙어 비켜주다가 옷에 자동차의 오물을 묻히기 싫어 승용차 한 대(!) 거리를 더 걸어가 주차된 차 사이에 몸을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몇 초가 짜증났나 봅니다. 운전자가 경적을 울립니다. 화가 나 혼자서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았는지 창문을 내리고 술 드셨냐고 묻습니다. 그의 가족도 아파트 바로 앞의 가게에 가려면 걸어야 하는데도 어느새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편리를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묵살하고 위협하는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결국 그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고 말다툼을 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그 차 뒤에는 2대의 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지요. 아내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는데 그때마다 그런 식으로 대응하다 주먹질까지 오가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제발 다음부터는 그냥 피하라’고 합니다. 어느새 나도 폭력플루에 감염된 것입니다.
내가 폭력의 일상화를 걱정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미얀마(버마)의 샤프란 시위 때 경찰의 발포로 생긴 사상자가 300여명쯤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온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해에 고등학생 자살자만 그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사회부적응이나 불만을 자살로 풀어내지만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가끔 집단범죄 외에도 골목길에 주차된 자동차에 연 이어 방화하거나 혹은 차량에 피해를 주는 사건들이 뉴스를 탑니다. 폭력이 일상화되면 사람들의 반응도 폭력적이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폭력이 어떤 임계값을 넘어 다수의 사람들이 계획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이 테러입니다. 바로 폭력이 테러의 기폭제가 되는 것이지요. (2009.11.12)
'내 꼬라지? > 살면서 가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3) | 2010.07.01 |
---|---|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시원한 똥침을 날립시다^^ 투표합시다! (0) | 2010.06.03 |
어~ 혈압올라 (2) | 2009.10.29 |
이제 살아있는 대통령은 없구나... (0) | 2009.08.18 |
얼마나 아팠을까... (0) | 2009.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