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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큰세상:아내가 쓴 책이야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며칠 전 한 신문의 일면에서 ‘서울시, 빈민 자활의지에 족쇄’ -강남 비닐하우스 촌에 과도한 변상금 부과- 라는 큰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내용은 이렇다. 서울시 소유 체비지에 1990년부터 서울시가 불법 점유에 대한 벌금을 물리기 시작했는데 그 벌금에 대한 연체이자가 해마다 15~25%란다. 이곳 사람들은 강제 이주되었던 사람들인데, 꼬박꼬박 부과되는 변상금과 연체이자 때문에 큰 빚을 져 빠져 나올 수 없는 ‘섬’에 갇혀서 산다.

주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대하는 강남구는 서울시에 “지금까지 체납한 체비지 변상금을 탕감하고, 앞으로 부과될 변상금 수준도 50% 낮추자”는 건의서를 보냈다. 이에 대한 서울시의 대답은, “딱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특정 지역 주민들에 대한 특혜 시비 소지가 있어 곤란” 하단다.

특혜시비? 누가 시비를 건다고 잘라 말 하는가? 이 기사를 읽고는 학생 때 읽었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떠올랐다. 1970년대 쓰인 소설 속의 주제가 30여년의 시간을 넘어 2004년에 그대로 재현되다니 참으로 씁쓸하다. 또 몇 십 년이 흐른 후, 다시 오늘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호의 형이 인쇄공장에서 우연히 이상한 노비 매매문서가 든 원고를 조판 하게 되었다. 매매문서 속에는 노비가 계속 대물림 되고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들은 일도 충분히 했고 고생도 충분히 했다.

끝은 어디인가?

끝을 보고 싶어 난장이는 벽돌공장 높은 굴뚝 꼭대기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렸던 것인가! 영희가 몸을 팔아 눈물겹게 계고장과 표찰을 훔쳐 아파트 임대 신청서를 쓰고 있었던 그때 고단한 난장이는 벽돌 공장 굴뚝 속에 떨어져 죽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어디로 갔는가? 대기권을 벗어나지 못해 철저하게 중력의 법칙대로 땅으로, 땅으로 떨어졌는가? 빈부의 법이 사람들을 밑으로, 밑으로 끌어내리듯 말이다.

이 소설은 나(영희의 큰 오빠), 영호, 영희 세 사람의 관점에서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각 부분에서 내 마음에 가장 크게 와 닿은 대목을 순서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공부를 하지 않고는 우리 구역에서 벗어 날 수 없고,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너무나 엄격하게 나누어져 있다.”

“경찰의 곤봉만이 폭력이 아니고 젖먹이 아이들의 굶주림을 내버려 두는 것도 폭력이다,”

“어머니는 주머니가 없는 옷을 우리들에게 입혔다.”

세대를 연 잇는 가난을 어떻게 중단시킬 수 있을까? 위에 옮겨 적은 이야기들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작은 고민들을 키워 갔으면 좋겠다. 가슴 뭉클하게 와 닿았던 것을 밑천 삼아서 말이다.

(조세희작, 1978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했던 것을 2000년 이성과 힘에서 다시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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