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꼬라지?/살면서 가끔...

내가 만났던 좋은 선생님 이야기

내가 만났던 좋은 선생님 이야기
-회현중학교의 이항근 교장선생님께-


나는 최근에 전교조전북지부장을 지냈던 이 선생님께서 군산회현중학교의 공모제 교장에 응모해 선발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며 나는 오래 전 내가 중학생 때 겪었던 일이 기억 나 이 선생님께 드리는 축하의 인사를 겸해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일은 내게 교육자의 가치관을 결정해준 중학생 시절의 두 경험 중 하나입니다.

내가 아마 중학교 1학년쯤 되었을 때, 전북에서 전국 중고등학교 교장대회(?)라는 것이 열렸고 그 중 한 행사가 우리학교에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회 대의원이었던 나는 그 행사에 동원되었고, 맡았던 일이란 게, 교장선생님들께서 행사장에 들락거릴 때마다 신발을 신고 벗는 것이 불편하다고, 발에 검정 비닐봉투를 씌워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고(정확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기독교계통의 외국어이름이었습니다)의 여자교장선생님 한분이 내 손에서 봉투를 빼앗아 직접 씌우셨습니다. 그리고는 “장차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너에게 이런 일을 시킬 수는 없지”라고 하시며 미소를 지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아주 오랫동안 뇌리 속에 남아,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대학에 온 후로는 내가 어떤 교수가 되어야 하는지를 내게 속삭여 주는 가르침의 목소리였습니다. 소설책 읽기에 푹 빠져 늘 도서관에서 온갖 소설책 빌려 읽는 것 외엔 관심이 없었던 평범한 중학생에게 그 분의 한 마디는 두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남겨주셨습니다.

첫째, 학생을 가능성의 크기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내가 어떤 학생인지, 성적이라든가, 장단점, 능력, 그리고 성격 등 아무것도 알지 못하셨지만, 날 마치 대통령이 될 사람인 것처럼 대우해 주셨습니다. 내가 꼭 대통령이 될 거란 의미에서 그렇게 대우하신 게 아닙니다. 내 안의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 가능성의 크기로 나를 대우해 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어쩌면 나보다 공부를 못하고, 머리도 나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능성의 크기로 볼 때, 이미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결정된 데로 살아가고 있는 나보다 백배, 천배 뛰어난 기회의 사람들입니다.

둘째, 그런 대우가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말 한마디는 마냥 개구쟁이로 살아가던 내게 인생의 목표라는 것을 생각해볼 단서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내가 공상에 빠질 때마다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셨습니다. 당시의 공상은 막연히 어떤 직업, 혹은 어떤 화려한 상황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유치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좀 더 성장하여 철이 들면서 이런 공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던 것입니다.

이 글은 사실 주제넘게 선생님께 드리는 글이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나 스스로 현재의 내 좌표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싶어 쓴 글이기도 합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부디 오랫동안 학생들의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내 꼬라지? > 살면서 가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빠가야로」  (0) 2008.10.06
부끄러운 인생  (5) 2008.09.09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벌고...  (2) 2008.06.30
블로그에 촛불달기  (4) 2008.06.03
중국유학생과 있었던 해프닝  (5) 2008.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