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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사진&생각

수박을 먹을 때면 생각나는 일

증조할아버지가 조선말기 제법 괜찮은 지위의 양반이셨는데, 무슨 이유때문인지 전북 김제로 오셨다고 한다. (기독교회의 영수를 하셨다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데, 조선말기 쇄국정책의 와중에 좌천되어 오셨던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일제 치하에서 농민운동을 하시다가 옥살이를 하기도 하시면서 건강을 해쳐서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시집온 후에 한양에서 몰려 내려온 증조할아버지의 양반 손님들 식사대접에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손님 한사람 마다 개인 밥상을 두 줄로 늘어놓고 양반들이 양쪽에 한 줄로 앉아서 마주 보며 대화하며 먹는 식사 대접...

내가 대학생 때 집안 역사를 추적하려고 첫째 큰 아버지 인터뷰를 시도한 적이 있다. 첫째 큰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10대의 나이로 할아버지와 같은 죄목으로 6개월 감옥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입을 굳게 닫고 오히려 내게 그런데 관심 갖지말고 그냥 살라고 했다. 전두환시절, 그런 역사를 들춰내다가 가족 중에 또 다른 누군가가 감옥살이 하는게 죽기만큼 싫었을게다. 나라를 위한 사람들이 두고두고 고생하는 그것을 정말 싫어했던 것 같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마저 일찍 돌아가셨으니 그 후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을지는 상상이 된다. 할머니가 순회 목사(당시에는 목사가 적어서 목사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교를 했다)가 김제에 오면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식사대접을 했기 때문에 그 순회목사가 목포에서 설교를 할 때면 같은 역할을 하던 부잣집 마나님이었던 외할머니에게 말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중매가 되었고, 오직 신앙 좋다는 이유로 결혼을 했다.(외할머니 사후에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늘 끼고 살던 성경에 내 돐사진 한 장만 들어있었다고 하니, 내가 어려서 외갓집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전주로 전근을 가게 되어 나는 태어난지 2년만에 전주로 이사를 왔다. 결혼 초기에 비해 사정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어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였던 전주 생활 초기, 다행히 전주에는 사실상 오늘의 전북대를 만든 당시 총장이셨던 이모부가 계셨다. 이모네는 부유했고, 어릴적에는 특별히 잘생겼던(?) 나는 그 집에서 늘 환영받는 귀염둥이였다.

어느날 동네 친구들을 몰고 이모집에 갔다. 5-6살이나 되었을까? 국민학교 입학을 7살에 했으니 분명히 7살이 되기 전이다. 물론 우리 이모네는 부자라고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조카가 동네 개구장이들을 몰고 왔으니 참 황당했을텐데, 이모는 수박을 내주면서 친구들과 먹고 놀라고 하셨다. 마당이 넓은 일본식 가옥이어서 마당에서 놀만했었다.(그 이모는 벌써 100살쯤 되셨을텐데 아직 살아계신다. 이분의 결혼 스토리 역시 글로 쓸만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데...)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가난해서 수박을 시장에서 파는 것만 보았지, 그때까지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 어떻게 먹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 껍질부터 먹었다. 이모는 아이를 수박도 못 먹어본 아이로 키운다고 어머니를 야단쳤고, 어머니는 그날 울면서 수박을 사오신 후 수박을 자주 사주셨다. 이 이야기는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꺼리이다. ^^

올해 처음으로 로컬매장에서 수박을 사왔다. 수박을 사오면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해체해서 통에 담아 보관한다. 껍질부터 먹는 실수를 절대로 반복할 수 없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