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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사진&생각

미중 패권전쟁은 없다

미중 패권전쟁은 없다, 한광수, 2019, 한겨레출판

내가 중국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덩샤오핑의 권력복귀 때문이다. 당시 운동권에는 마오쩌둥을 존경하는 풍토가 있었지만, 나는 그 인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개혁정책을 지지했고, 이 정책이 중국을 크게 바꾸어 중국이 세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리라 믿었다. 친미사대주의와 북한과의 적대적인 태도가, 바뀌고 있는 중국을 무시하게 만들 것이고, 이는 한국의 미래에 심각한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과 함께였다. 물론 당시의 우려는 한 때의 걱정 거리였을 뿐 그 후로 오랫동안 중국에 대한 관심은 신문기사를 읽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다시 중국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된 것은 2000년대 들어와서 이다. 당시에 한국에는 넛 크래커론 혹은 샌드위치론이 무성했다. 한국의 산업은 선진국과 중국에 끼여서 망할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고급기술이나 상품은 선진국을 따라잡지 못하고, 지금 누리는 기술적 우위는 중국의 빠른 추격으로 4-5년 뒤면 한국은 설 땅이 없다는 것이 당시의 주장이었다.

정말 그럴까? 자동차산업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이 주장이 맞는지에 대해 확인해야한다는 학자적 호기심과 사명감이 한껏 자극받고 있었다. 그래서 2005년경부터 중국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물론 첫 방문의 목적이 중국의 자동차산업 기반을 내 눈으로 보고 돌아다니며 조사하는 것이었다. 첫 방문에 동행한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모두 다른 목적으로 갔기 때문에 진지한 연구를 목적으로 돌아다닌 것은 내가 유일했다. 그 후로도 4번쯤 자동차산업기반을 조사하기 위해 더 방문한 것을 포함하여 여행까지 감안하면, 아마 20번쯤 다녀온 것 같다.

그 동안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에게 숙청되었다가 마오가 죽은 후에 비로소 복권되었고 마오와 다른 노선을 걸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덩이 그 시대를 생존하여 복권이 가능했는가였다. 심지어 중국의 권력구조는 북경과 상해가 양분하는데, 어떻게 두 그룹 사이에 갈등이 없는 것 일까?

이 책의 제1부는 중국의 지도자 연대기쯤 된다. 그러나 단순한 연대기는 아니고 미중관계를 중심에 놓고, 어떻게 공산주의국가가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는 지를 추적하는 작업이다.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지도자들이, 정적을 암살하는 러시아와 달리, 서로 투쟁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인정하고 후계자를 양성하듯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본질적으로 미중관계를 통해 우리가 선택할 미래전략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제2부에는, 미국과 중국은 서로 적대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상대방의 존재가 자신들의 존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경쟁과 협력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의 상호 불가분적인 협력과 관련해서 2010년 문정인교수가 쓴 ’중국의 내일을 묻다’에서 대략 다음과 같은 의미의 글을 읽은 것이 기억난다. ‘저녁에 한국이 중국을 이러저러하게 대응하자고 미국에 제안하면 다음 날 아침 미국은 바로 중국에 한국이 이렇게 말하더라고 알려준다’

두 나라가 G2가 될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장의 크기에 있다. 과거에는 미국이 절대적인 시장을 기반으로 주요 제조업 생산국가들과 무역을 하고, 달러의 힘(저자는 발권력이라고 하고 정확한 의미는 기축통화이지만 우리에게는 미재무성채권)을 수단으로 삼아 이 제조업국가들을 약탈하는 기막힌 시스템을 누려왔다. 그러나 이 시장패권은 점차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미국은 군사적 패권을 가지고 G2를 구성하고 있다. 2030년쯤엔 중국의 시장규모가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힘이 월등해질 때까지 미중관계는 중국의 양보 속에서 유지될 것이다.

이 책의 제3부는 이러한 미중관계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할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사실 거대한 양국 사이에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않다. 아니 안전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가 이 부분은 구체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점은 분명하다. 중국과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두 거대 국가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의 번영을 위한 선택을 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