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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자동차 굴러굴러

도요타가 갑자기 품질불량의 나락으로 떨어진 까닭


도요타가 갑자기 품질불량의 나락으로 떨어진 까닭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은 자동차를 리콜(이미 판매한 자동차를 회수하여 불량을 수리한 후 돌려주는 것)하고 있는 자동차회사는, 믿기 어렵겠지만, 일본의 도요타이다. 최근 언론보도에서 드러난 것처럼 2009년 말 부터 리콜한 것만 해도 총 480만대에 이르며, 결국 지난 1월 26일 북미지역 5개 공장이 생산 중단에 들어갔고 8개 차종의 판매도 중단했다. 이는 그동안 도요타 성공신화의 배경이었던 고강도의 노동현실이 이제는 반대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미국에서 도요타 렉서스 ES350을 타고 가던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차량 매트의 결함이라고 발표하면서 북미시장에서 426만대를 리콜했지만, 다시 가속패달에 문제가 있음(가속패달에서 발을 떼어도 되돌아오지 않아 계속 가속되는 현상)이 밝혀져 추가로 리콜을 실시하면서 생산 및 판매 중단이라는 이번 조치로 이어진 것이다. 판매가 중단된 8개 차종에는 도요타 신화의 주역인 캠리와 코롤라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 일반 소비자들이 도요타의 자동차를 사랑하는 동안에도 이미 전문가들은 도요타의 품질문제를 우려해왔다. 소비자들만 짝사랑을 해왔던 것이다. 지난 2006년 7월 24일,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전문지 [주간동양경제]는 커버스토리로 도요타의 품질신화가 붕괴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00년대 들어 급증한 리콜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에는 일본에서도 판매대수보다 더 많은 자동차를 리콜했다. 2001년 일본에서 판매대수의 1.4%만을 리콜했던 도요타가 2005년에는 판매대수의 34%에 달하는 자동차를 리콜했다. 반대로 혼다는 2001년에 21.9%를 리콜했으나 2005년에는 3.6%만을 리콜했다. 2005년에는 미국에서 크라이슬러보다도 더 많은 자동차를 리콜해야했다. 품질저하는 당연히 인명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번 사태가 이 글의 제목처럼 갑자기 터진 일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결코 갑자기 터진 일이 아니다


리콜 사태는 유럽과 중국으로 번져 도요타는 세계적인 리콜사태에 빠졌다. 지난 수년 동안 리콜을 미루면서 시간을 끌어 왔던 것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번 사태가 설계결함 때문으로 밝혀지면 생산현장의 품질문제가 연구개발부문으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해 도요타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품질의 대명사였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기업들이 도요타를 배우자고 외쳤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도요타 생산방식에 있다. 여기에 최근 몇 년 동안 급성장으로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이 되면서 보수적인 경영방침에서 후퇴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도요타생산방식은 노동자들을 단 한순간도 한눈팔지 못하고 노동에만 매달리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요타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말하는 소감의 첫 마디는 ‘노동자들이 뛰어다니면서 일한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정부나 경제단체들은 ‘도요타가 고수익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동결하고 있다고 보고 좀 배우라’고 다그치곤 했다. 그러나 바로 이 고강도의 노동과 임금인상 억제라는 경영정책이 세계 1위가 된 지금 도요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과거 도요타의 노동자들은 2차대전 패전 후 복구와 도요타의 부도위기 극복과정에서 만들어진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런 정책을 말없이 수용하였다. 그러나 그 세대 노동자들은 정년퇴직으로 노동현장에서 사라지고 이 자리는 경제대국 일본의 신세대 노동자들로 채워지면서 이런 정책은 도전에 직면하였다. 행복하지 않은 노동자는 결코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원가절감 요구는 하청업체 역시 도요타생산방식을 통해 대응하게 만들었고 도요타와 같은 노동의 문제를 야기한다.


행복하지 않은 노동자에게 높은 품질 기대할 수 없어


다가 세계 1위라는 욕심 때문에 안전위주의 경영이라는 도요타의 본래 모습과 반대로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해외공장을 늘렸다. 해외공장의 노동자들은 이런 노동조건을 더더욱 수용할 수 없는데도 도요타는 해외공장에 많은 본사 노동자들을 파견하여 같은 생산시스템을 강요해왔기 때문에 해외에서 품질 저하는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 본사 노동자의 해외파견 증가는 다시 본사의 인력부족을 가져왔고 이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이는 본사의 노동품질 저하를 가져와 일본 내 자동차품질도 떨어트리는 악순환에 빠졌다.


이번 사태가 암시하는 또 다른 문제는 만약 이번 품질문제가 단순히 생산품질의 문제가 아니고 설계문제일 때 발생한다. 도요타생산방식을 린생산방식이라는 세계 제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한 가장 큰 장점이었던 연구개발기간 단축이 허상일 수도 있다. 기간단축과정에 연구개발인력도 생산노동자들처럼 행복하지 않은 노동조건 속에서 설계품질 저하가 발생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도요타가 세계 1위가 되는 시점을 뒤로 늦추고 노동자의 몫을 늘리면서 서서히 준비 했다면 오늘과 같은 사태에 이르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해외생산기지를 적정한 수준으로 억제하고 일본 내 생산에 좀 더 충실하면서 해외공장은 그곳의 문화에 적응한 새로운 생산시스템을 개발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사태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다른 거대 기업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결국 노동강도와 임금은 매우 정교하게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자동차산업은 노동강도는 약하고 임금은 높은 구조 속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대로 도요타는 너무 높은 노동강도와 통제된 임금으로 크게 번성하여 세계 1위가 되었지만 즉각 위기에 빠졌다. 노동자에게만 도요타를 배우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결국 도요타처럼 1위에 오르면서 동시에 위기에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생명력이 더 강한 생산방식과 노동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생명력 강한 생산방식과 노동모델 만들어야


OECD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독일의 실업률이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를 조사해 보니 독일의 주력산업인 기계/자동차부문에서 실업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때 위기에 빠졌으나 위기를 맞았을 때 해고 대신 임금을 낮추어 함께 살고, 수익이 날 때는 임금을 적절히 지불해 숙련노동자를 유지해온 독일의 자동차기업들이 지금은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0. 1. 29.최초 작성, 2. 2. 수정)

(사진: MotorTrends의 홈페이지에 실린 것으로 렉서스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은 이유를 보여주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