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서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제5장 결정: 민주주의와 잠체주의의 간략한 역사”의 일부 (194p.) : 윤석열정부 3년 동안 벌어진 일과 너무나 닮았다. 대법원판사들을 구성한 것이나 이진숙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해 맘대로 방송국을 매각하고 인사권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등…

“강압적인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자정 장치를 차례로 공격하는 것이다. 대개 법원과 언론부터 시작한다. 전형적인 독재형 지도자들은 법원의 권한을 박탈하거나 법원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모든 독립적인 언론 매체를 폐쇄하는 한편 전방위적 선전 기계를 구축한다.

법원이 더 이상 법적 수단으로 정부 권력을 견제할 수 없게 되고, 언론은 정부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기만 하면, 정부에 감히 반대하는 기관이나 개인은 모조리 반역자, 범죄자, 또는 외국 스파이로 매도되어 박해받을 수 있다. 학술 기관, 지방자치체, NGO, 민간 기업은 해체되거나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이 단계에 이른 정부는 선거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기 있는 야당 지도자를 구속하거나, 야당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선거구를 제멋대로 고치거나, 유권자의 투표권을 박탈할 수 있다. 이런 반민주적인 조치들을 고발하면, 정부가 심어놓은 판사들이 이를 기각한다. 강력한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과정을 반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래 사진은 슬로우뉴스의 한 조각이다.(슬로우뉴스는 이메일로 뉴스를 받아보는데, 주요 기사를 잘 요약하여 전달해준다. 바쁜 사람들이나 온라인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겪는 혼란을 줄여주는 좋은 매체이다.) 2001년에는 지멘스 미국에서 당시 내 대학 연봉의 세배를, 그리고 2016년에는 중국의 대학에서 내 연봉의 다섯배를 제안 받은 적이 있다. 2001년에는 아직 한국에서 내가 기여할 일이 많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2016년에는 퇴직 후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퇴직의 기쁨을 포기할 수 없어 23년에 가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왜 중국으로 갈까? 이 질문에 대해 윤석열의 연구비 삭감만으로 퉁치면 본질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다. 시작은 IMF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가 터지자 정부가 세출을 줄이기 위해 국가연구소들을 통폐합하고 연구원들을 해고했다. 한국에서 법대 선호현상은 매우 오래된 일이지만, 의대 선호현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해고된 연구원들이 대학에 시간 강사로 유입되면서 자신의 자녀는 해고가 없는 의대로 보내기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기업의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과 대학 사이에 교류가 활발했는데, 주로 연구원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실용연구를 대학에 와서 강의해주는 방식이었다. 이들 역시 기업에서 해고했다. 이유는 대학에 가서 자리잡으면 되지? 였다. 그렇게 70-80년대에 공학, 과학으로 몰려 갔던 인재들은 자녀들만은 의대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당연히 의사가 되는 목적도 해고되지 않는 직업이라는 것이었다.

이걸 또 한쪽에서는 의사가 돈을 잘 벌어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모든 부를 소수의 자본가에게 몰아주자는 말밖에 안된다. 마치 정규직노동자의 소득이 많다고 공격하면서 정작 비정규직을 늘리는 자들의 말과 같다. 연구자들을 천대해서 빚어진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의사를 천대하자는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공계기피현상은 연구비를 늘려서 해결해야 맞다. 이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연구자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대학이 이공계 연구자를 담고 있는 댐이 되어 나라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윤석열이 카르텔이라며 공격하던 연구비는 사실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적어서 문제였다. 우리 사회가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몰락해가는 것을 막을 유일한 수단이 국가 연구비였는데, 그걸 더 줄이겠다고 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을 만약 내가 들은 것만 공개해도세계적인 망신이 될 것이다. 이미 하바드대학과 칭화대학의 1년 예산이 서울대의 열배나 되는데 더 줄이겠다면 어쩌자는 건가?

관점이 어떻든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의사는 없다. 그리고 지금 개업의로 돈을 잘 벌고 있어서 그냥 이대로 은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소위 내 또래 부자 의사들도 자신이 늙어서도 현재와 같은 신속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적어도 내가 알고 지내는 십여 명 의사들은 모두 그렇게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은 단순하다. 그렇다고 해결도 단순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시스템과 자본주의시스템
이분도 지적했지만(아래 링크), 공공의료시스템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영국과 캐나다는 의료를 공공시스템으로 만들었다. 의사는 국가가 고용한 공무원이다. 당연히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노동자로서 모든 권리를 누린다. 근무시간이나 근무조건 등에서 한국의사들은 그곳이 천국이라고 말한다. 정작 그 나라 의사들은 대우에 불만을 가지고 같은 영어권인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한국이나,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의 의사들이 메우고 있다.  사회주의의 모순이다.

미국은 의료에도 자본주의가 적용된다. 정상분만일 경우 출산비용은 2만 달러(한화 약 2800만 원) 정도이다. 그래서 빈곤층의 의료비용을 국가가 세금으로 메꾸고 있어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병원에 못 가보고 죽는 사람이 매우 많다. 변호사 역시 많아서 의료분쟁이 붙으면 엄청난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린다. 그래서 모든 의료행위에 돈이 붙는다. 예를 들어 환자를 옆 병원으로 이송하고자 할 때 환자가 걸어가도 충분할 때조차 앰뷸런스를 배치한다. 물론 우리 돈으로 100만원 이상의 비용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만약 그냥 보냈다가 환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소송에 휘말리면 한마디로 주머니 털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한국은 어떤가? 오바마 대통령이 칭찬했던, 국민건강보험은 전형적인 사회주의 시스템이다. 이시스템은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에 비례하여 보험료를 납부하고 만들어진 보험료 풀에서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글쓴이가 착각한 부분인데, 그래서 한국 역시 제도상으로 모든 의료는 공공의료이다. 공공병원이어야만 공공의료인 것이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의 구조가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이론상) 예산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도 공공의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저소득층에게는 특별지원이 있어서 거의 돈을 내지 않고 치료받고 있다. 그래서 공공의대건립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병원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시스템 차이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한국의 좋은 제도가 완전히 망가지고 있다
의료비용을 사회주의시스템으로 해결하는 좋은 제도가 또 다른 방식으로 낭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간다. 게다가 주말이나 저녁에는 응급실로 달려간다. 사회주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캐나다에서  응급실을 이용하려면 자기 부담금이 크게 늘어난다. 우리는 별로 높아지지 않는다. 이게 응급실 사태의 또 다른 원인이다. 응급실 의료진의 혹사는 당연히 진짜 응급환자의 치료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의료사고 증가의 원인이 된다. 게다가 캐나다에서, 예를 들어 간초음파를 보려면 6개월이 걸린다. 실제로 필자는 밴쿠버에서 조카 부부가 모두 의사인데도 간초음파를 보려면 6개월이 걸린다고 해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진료받은 적이 있다. 만약 일찍 서비스를 받으려면 응급실로 가야 하고 비용을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한국인이 얼마나 병원을 무작정 이용하는지는 2021년의 다음 통계가 보여준다. 고령화사회를 우리보다 훨씬 일찍 겪은 일본의 경우에도 국민 1인당 진료 횟수가 11회에 불과한데, 한국은 16회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 통계만으로도 의사 증원의 이유로 고령화사회를 제시한 정부나 시민단체, 언론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공공의료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는 의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국가가 책임진다. 병원을 세우는 것도, 의사를 교육시키는 것도, 의사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의료분쟁을 해결하는 것도 국가 책임이다. 한국은 사회주의시스템을 운영하면서도 모든 투자와 책임은 민간에, 특히 의사에게 떠넘기고 있다. 단 하나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없다. 아니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관련조직을 통해 국민이 낸 보험료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비효율이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일에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이번 의료대란으로 많이 듣게 된 필수의료 경시와 같은 것 말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제 발생한 의료비용의 85%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험수가이다.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진다. 당연히 적자를 메우려면 비급여항목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감기환자가 오면 의학적으로 전혀 쓸모없는 링거액을 맞게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비급여는 일반적으로 의학적으로 필요 없는 과잉진료에 해당한다. 이걸 조장하는 것이 대형병원을 운영하는 보험사를 가진 재벌들이 만든 실손보험이다. 그래서 개원의 소득이 높다. 정부는 OECD에 개원의 소득을 보고해서 의사 소득이 세계적으로 높다고 말한다. 그러면 다시 정부는 과잉진료를 엄벌하겠다고 나선다.

의료를 돈벌이로 만들려는 집단의 폭거
한국의 공공의료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민간보험회사들이다. 자본으로 의료를 장악하는데 최대 장애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보험의 의료비 보장수가가 낮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비보험 의료비용을 보상해 주는, 실손보험이라는 이름의 불평등한 의료시스템을 도입했다. 이게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열심히 영업해서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면, 비용 걱정이 없는 실손 가입자들이 더 좋은 병원으로 몰려가 점점 소위 탑 5 병원이라는 것이 등장하고 그들만 돈을 벌어들였다. 지방대학병원들은 적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 양대 보험회사를 거느린 두 재벌그룹이 국내 최대 병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전공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지금은 법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80시간으로 줄였지만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법정노동시간이 100시간을 훌쩍 넘었다. 당연히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동안 우리를 치료하던 전공의가 편의점 알바생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노동착취를 통해 우리네 병원들이 적자를 면하고 있었다. 얼마전 서울의대 교수 셋이 성명을 내 언론 등의 찬사를 받았다. 악랄한 인간들이다. 교수가 되면 전공의 도움 없이 환자를 볼 수가 없다. 시간이 부족해서이다. 하루 12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대학병원이 돌아갈 수가 없다. 의사를 제외한 병원인력은 철저히 노동법 기준을 적용받지만 의사들은 예외이다. 이번 의대정원사태는 실손보험으로 환자를 싹쓸이하던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더 많은 환자를 빨아들이려고 수도권에 6,600 병상을 늘리는 과정에서 전공의가 아니면 돈벌이가 불가능하니 의대정원을 늘려야만 했다는 주장이 있다.

2025년 의대입시 중단 없이 의료문제 해결 어렵다
2025년 의대입시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는 산수 문제이다. 현재 의대교육시스템은 약 3000명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를 갑자기 1500명 증원했다. 게다가 재학생이 모두 휴학해 버렸다. 2025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이 자꾸 4500명을 교육시킨다고 오해하는데 사실은 3000+ 3000+ 1500=7500명 (100이하는 무시)을 교육시켜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의학교육은 국어수업이 아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교육은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 교육은 여건이 안되면 무조건 부실해지고 의대교육이 부실해지면 엉터리 의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노조의 파업은 찬양하면서 왜 이들의 현장이탈을 욕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정치권의 책임
호시탐탐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던 정당에서 갑자기 필수의료 강화나 지방에 의사를 공급하겠다며 추진한 증원이 사실은 영리 병원을 위한 포석인 셈이다. 물론 명분은 반대쪽 정당이 주장하던 공공의대 설립 논리를 차용한다. 지금도 전남에서는 의대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지지정당과 상관없이 많은 국민이 지지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 자신들에게 족쇄가 된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이런 모든 사태의 배후에는 정치권이 있다. 어느 당에서는 의료민영화로 의료를 재벌의 돈벌이로 만들어 주기 위해 공공의료를 파괴하려 하고, 또 다른 정당에서는 의사를 괴롭히는 정책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는다. 그들이 지금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파괴하고 있고, 나의 노후 건강에 칼을 들이대는 주범들이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167682.html

한국에서 이런 근본적인 이슈들을 토론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사회는 학살과 집단사망사고가 이어지는 곳이라 무관심한지, 아니면 내가 무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세 아이를 낳고 길렀기 때문에 남의 일처럼 느낀 탓도 있을 것이고요.

그러나 좀 더 넓게 보면, 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슈여서 무심하게 스쳐지나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침 폴리티코에 실린 이 기사를 차분히 읽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입양단체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Snowflake babies”  입니다. 체외수정(이 기사를 이해하려고 찾아보니 난자와 정자를 따로 체취하여 수정시킨 후 초기 세포분열이 진행된 며칠 뒤 여성의 자궁에 이식하는 것이랍니다)을 하게 되면 여러 개의 수정된 배아가 만들어지는데, 실제 자궁에 이식되는 것은 한 개 뿐이므로 나머지 배아는 사용되지 않아 냉동보관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관된 냉동배아가 미국에만도 수백만개가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버려질 운명입니다. 보수적인 생명윤리관으로는 살인이지요.

이 프로그램은 이런 냉동배아를 마치 어린이입양처럼 입양하는 캠페인입니다. 자신의 자궁에 이식하여 자신의 아이로 키우는 것이지요. 비록 유전자는 상관없지만, 한국식으로 표현한다면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되는 것이지요.

생명에 대해 보수기독교와 페미니스트 그룹 사이에 논쟁이 오랜 지속되는 미국사회에 새로운 절충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배아 단계부터 생명성을 인정하는 보수기독교 입장에서는 생명의 유지이고, 진보진영에게는 자유로운 형태의 임신을 보장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차별금지법를 동성애권장법이라고 우기는 한국 교회의 부모가 미국기독교이니… 일단 미국침례교는 이 단체를 반대하고 있다 합니다.

반대라도 좋으니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결정은 듣는 우리가 하면 되니까요.

https://www.politico.com/news/magazine/2024/10/06/adopting-discarded-embryos-ivf-crisis-00169174?fbclid=IwZXh0bgNhZW0CMTEAAR0EDrIX-0iEMOakahL9Gx4yTeDJ1NmFWGuDYGbCSUsf8C62ygh4M2gMnqI_aem_mgNKXynvmNfWD8ZX3LS8tg

How ‘Snowflake Babies’ Could Change IVF Politics

“Snowflake” babies helped people on the left become parents and helped people on the right make peace with thorny ethical issues with IVF.

www.politico.com

시사인 2024년 3/26일자의 커버스토리에 양승훈교수의 의견이 실렸다. 그는 사회학자여서 산업을 연구하는 나와는 다른 물에서 놀고 있지만, 아마 한번쯤은 어디선가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가 울산의 제조업에 대해 내놓은 걱정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제조업은 구상과 실행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구상과 실행이 분리되면, 양교수의 걱정처럼, 지방은 더욱 빠른 속도로 망가진다. 지금 한국이 그렇다. 미국은 실행에 해당하는 생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구상만 하면서 부가가치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애플이 미국에서는 설계만 하고 생산은 중국에서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국가는 기업 덕분에 부자여도 국민은 가난한 이유이다. 그래서 미국이 IRA법이나 반도체관련 법을 들고 나온 것이다. 아예 모든 가치사슬을 미국내에서 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마 하버드대학에서 출간한 피사노와 시의 저서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이 책의 번역판이 국내에서도 출간되었다)
오래전 한국지엠이 연구소 부지를 물색할 때, 내가 무조건 군산에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부가가치가 높은 부문은 수도권에서 이루어지고 노동만 남은 지방의 경제가 어렵고 청년인구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도 무식한 말을 하면서 내 말을 묵살했던 것은 지역의 언론과 정치권이었다.
다만 한 가지 더 고려할 점은, 기업가정신의 영향이다. 중국은 반도체도 자동차도 구상은 없고 실행만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미국이 오금 저려하며 중국을 견제하게 만든 것은 실행의 축적을 통해 구상을 창조한 능력 때문이다.(이 부분은 이정동, 축적의 시간을 보기 바란다)
중국을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기업을 일으켜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의 욕망과 정부의 정책지원이 실행의 축적을 통해 구상력을 창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애플은 중국을 생산기지로 이용하여 돈을 벌었지만, 동시에 화웨이, 오포, 비보, 샤오미 같은 경쟁자를 탄생시키는데도 기여한 셈이다. 세계의 유수한 자동차회사들은 중국에서 돈을 버는데 성공했지만, 비야디, 지리자동차, 창안자동차, 둥펑자동차, 샤오펑, 웨이라이, 리샹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들이 탄생하는 기반이 되었다. 요즘은 다들 EV는 중국이 앞서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자율주행차이다. 중국 대륙에서 대형트럭들이 자율주행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위협이다.
그러나 요즘 중국의 창업학 교수들을 만나보면, 그런 중국도 점점 기업가정신이 사라져 걱정이라고 한다. 이미 부자가 된 중국 청년들도 우리 처럼 도전보다는 안주를 원한다고 한다. 한국은 어떤가? 구상기능이 수도권으로 이전했는데, 생산기반을 가진 지방에서 기업가정신이 발휘되어 생산기술 기반으로 새로운 구상력을 창조할 수있을까? 한국의 재벌체제가 이를 허용할리 만무하다. 그렇게 한국은 다시 유교가 나라를 갉아먹던 조선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시사인의 기사와 미국의 정책변화를 끌어낸 책

신문을 읽다가 마음이 아픈 기사를 읽었습니다. 요즘, 단어에 대해 그 의미를 살펴 정정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아마 그런 일의 하나로 유모차를 유아차로 변경하고 있나봅니다.

1. 단어의 문자적 의미로나 또 역사적인 경험으로나 유모차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에 와서 단어를 그런 문자적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유모차라고 해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오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꼭 바꿔야 하느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단어가 한두개가 아닐 것입니다. 인정합니다.

2. 그러나 기사의 사진 속에서 발견한 글은 충격적입니다. 유아차는 중국에서 쓰는 말이라며 비아냥 대는 글 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단어 중에 (구체적으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순 우리말은 30%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중국은 유아차라고 제대로 된 단어를 쓰는데 중국이 싫어서 우리는 유모차를 고집해야 할까요?

3. 저 댓글을 단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국산을 다 빼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장담하는데 한달 안에 굶어죽거나 겨울이라면 얼어 죽을겁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자기들의 빈부격차가 폭동으로 이어지는게 두려워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값싼 노동력을 갖거나 환경오염에 무지한 나라에서 싸게 조달한 물건을 자국민에게 공급해왔습니다. 어느 한 나라의 영향을 줄일 수는 있어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미국이 앞으로는 중국봉쇄를 외치면서 뒤로는 살살 달래고 있는 이유입니다.

4. 줄이는 방법은 언제나 폭력적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 프라자합의를 통해 일본을 30년 이상 불황에 빠지게 했고, 1990년대 말에는 한국을 외환위기로 망가트렸지요.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을 봉쇄하려는 시도를 노골화했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 인도를 대안으로 선택했지만, 인도가 내부 사정으로 중국을 이어받지 못하자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인도와 베트남은 모두 중국과 인접국으로 중국과 부분적인 국경분쟁이 있는 나라들입니다. 아무튼 인도에 진출했던 미국의 자동차기업들은 모두 인도를 떠났습니다.

5. 우리가 경제적이득을 위해 미국의 이런 전략적 선택에 편승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축인 중국에 대해 적대적이라면, 한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문재인정부가 시작될 때,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는 다음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는 그 때 갑자기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오래 누적된 생각의 결론이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1. 낮은 출생률
2. 고도 성장 불가

2번부터 거칠게 정리해보자

이미 한국경제는 과거와 같은 고도 성장이 불가능한 단계에 진입했다. 가난한 나라는 조금만 노력해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지만 한국처럼 이미 충분히 성장한 나라는 조금만 성장해도 그 절대적인 증가량 규모는 가난한 나라의 10-20% 성장에 해당할 만큼 증가한다. 게다가 폐쇄경제에서 경제의 장기성장률은 인구증가율로 수렴한다. 인구증가율이 낮아지거나 아예 감소하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고도성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고 싶은 자들이 계속 국민들을 속여온 것이다. MB가 대선에 777슬로건을 내세운게 대표적이다. 7%성장이라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물론 본인 재산은 그보다 훨씬 크게 늘렸을지도 모르겠다. 근본이 정치꾼(정치인이니 당연하고 사기꾼이라 해야 하나?)이다.

한국이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구조로는 수출밖에 없다. 무역의존도가 독일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경제에서 무역비중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로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중국시장을 놓치면 독일과 한국은 바로 곤두박질 쳐서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종종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끌어다가 사용한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지난 10년간 경제성장률이다. 코로나 이후 잠깐 갑자기 높아진 데이터만 반영하면 마치 높은 성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체로 2% 내외에 수렴한다. 2010년~2020년 미국의 인구증가율은 7.35%이다. 연간 0.7%쯤 되는데, 결국 진짜 경제성장은 1.3% 내외라는 뜻이다. 한국은 올해 성장률 1.5%로 예측되었다. 인구는 0.4% 감소할 것이다. 결국 내용상으로는 1.9%의 경제성장률이다. 여전히 미국보다 높다. 일본의 장기불황 중 일정 몫은 인구감소에 있다. 한국의 진짜 문제는 탈중국정책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보다 더 끔찍한 장기불황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꾼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국민을 정신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노인들을 기반으로 하는 국힘은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민주당, 그리고 진보를 표방한 정치집단 중 어느 하나도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림) 마국의 경제성장률 추이(출처: https://ko.tradingeconomics.com/united-states/gdp-growth-annual)

세상에는 왕정국가도 많고 일당지배 국가도 적지않다. 흔히 일당지배국가라고 하면 쉽게 중국의 공산당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국가 중에도 있다. 그 대표가 일본이다. 물론 일본에는 많은 군소정당이 있다. 그러나 수구보수진영의 양대 정당이었던 자유당과 민주당의 야합(1955년)으로 탄생한 자유민주당(자민당)은 일본 국민들의 변화요구에 잠깐 정권을 놓은 것을 빼면 줄곧 정권을 놓지 않은 장기집권 정당이다. 풀뿌리 정치를 빼면 사실상 일당지배국가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1990년 위기에 몰린 군부 쿠데타세력은 당시 4개 정당으로 나뉜 정당체제 중에서 3개의 정당을 통합하여 민주자유당(민자당, 일본 자민당과 글자 순서만 다르다)을 출범시킨다. 일본식 영구집권 시도였다. 지금의 국민의힘의 원조이다. 그리고 당시에 홀로 남은 한 정당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다.

일본은 야합이 성공하였지만, 한국에서는 처음에는 성공하는듯 했지만 결국 양당체제가 자리잡아 실패하였다. 한국 국민의 선택이 일본 국민과 달랐던 것이다.

한국에서 다시 이런 음모가 진행되는 듯 하다. 군부 대신 검찰이 국민의힘을 장악했고, 검찰정권이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있다. 그 첫 단추가 불체포특권의 폐기이다. 검찰이 야당 의원을 체포하여 영원히 여당이 다수당인 국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는 검찰이 변호사 이외의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강제하는 특별법과 현재 검찰의 인적 청산이 이루어질 20년쯤 뒤에나 실천되도록 거론할 일이다. 지금 진행되는 이런 일은 한국에서 또 다시 민자당을 만들려는 음모일 수 있다. 기자들이 함께 음모의 주체가 되지 않길 바란다.

https://mnews.jtbc.co.kr/News/Article.aspx?news_id=NB12132131&mibextid=Zxz2cZ

어제 엔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에 진입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은 이자율이 높고 일본은 낮은 탓이다. 당장 나타날 일은,
1)한국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다. 시간이든 돈이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원화가치가 높아 일본관광의 유혹이 크기 때문이다. 이게 문제는 아니다.
2)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화이트리스트 배제라는 자충수를 두었고 한국은 소부장 국산화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이트리스트 품목들을 국산화하거나 대체수입선을 발굴해서 한국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환율변화는 심각하다. 국산품이나 대체수입품의 가격이 일본산보다 비싸져서 그동안의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때문이다.
3)이미 대중관계 악화로 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한 수준인데 대일 무역적자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중국과 무역에서 번 돈이 일본으로 빠져나간다.
2023.6.20.

영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열화우라늄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겠다고 한다. 러-우 전쟁을 걱정하는 것은 이 전쟁에 핵이 사용될 가능성 때문이다. 미-영은 이미 이 포탄을 이라크와 발칸에서 사용했다. 그러나 상대방이었던 국가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파장이 작았다. 그럼에도 기형아 탄생이 급증했었다. 게다가 러-우 전쟁은 다르다. 러시아가 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앵글로색슨들이 핵전쟁을 유도하고 있다.

Ukraine war: UK defends sending depleted uranium shells after Putin warning https://www.bbc.co.uk/news/world-europe-65032671

Ukraine war: UK defends sending depleted uranium shells after Putin warning

The UK says the depleted uranium shells, which it is sending to Ukraine, are "standard".

www.bbc.com


이번에는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핵전쟁의 위험은 갈수록 높아진다.

Putin: Russia to station nuclear weapons in Belarus https://www.bbc.co.uk/news/world-europe-65077687

Putin: Russia to station nuclear weapons in Belarus

The Russian leader says the move would not violate nuclear non-proliferation agreements.

www.bbc.com


미국의 역사에서 남북전쟁이 끝난 후, 1800년대 후반은 산업혁명이 절정에 이르러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낳았다. 카네기 같은 입지전적인 부자가 탄생한 시절이기도 하다. 이들이 기업 합병이나 담합을 통해 사회적으로 끼친 죄악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업합병과정에 전투가 벌어지는가 하면, 노조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도 하지만, 사법처리 대상은 오직 노동자들뿐이기도 했다. 인종 카스트가 부활하고, 링컨이 주장했던 노예 해방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휴가나 쉬는 시간이 없이 이루어지는 장시간 노동에 임금은 낮았고, 노동환경은 끔찍했다.

1890년에만 2,451명의 철도 노동자가 근무중에 목숨을 잃었고 다친 사람은 22,000명이 넘었다고 한다.(<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 폴 S.보이어 지음, 김종원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1) 그래도 이 시기에 미국이 잘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1890년에 바로 셔먼법이라고 하는 독점금지법을 제정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본가의 친구들이 되어 버린 보수 사법부는 이 법을 1894이 되어서야 비로소 적용하였는데, 그 첫 사례가 가소롭게도 미국철도노조에 대한 것이었다. 노조를 독점집단이라고 본 것이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도 미국의 독점금지법처럼 그 취지가 기업의 독과점에 따른 폐해를 막고 기업들의 담합행위를 막기 위한 조직이다. 그런 공정거래위원회가 건설노조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여 벌금을 부과하였다고 한다. 그동안 특수고용노동자를 사업자로 보는 한국과 달리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이들을 노동자로 보는 추세이다. 심지어 가장 자본친화적인 미국조차도 자영업자와 노동자를 구분하는 판단 지침을 가지고 있어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고용노동부도 노조설립을 인가해주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불법행위는 노조법을 바탕에 두고 형사법에 의해 처벌해야 한다. 경쟁법(공정거래를 보장하기 위한 법)을 노조에 적용하는 것은 130년 전의 미국의 불법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정위 직원이 뇌물 수수를 했는데, 이를 경쟁법 위반으로 보고 공정위를 해산시키겠다는 심판과 다를 게 없다. 노조의 불법을 기업의 불법을 다루는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불법을 처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노조를 탄압하겠다는 공공연한 선언이다. (기사는 아래 링크 참조)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73581.html

노조를 ‘사업자단체’ 잣대로 제재…공정위, 도넘은 노동탄압

특수고용 노동조합에 공정위 최초 제재 사례1인 자영자에 ‘경쟁법 적용’ 않는 게 국제 기준

www.hani.co.kr

한국 조선업이 일본을 이긴 것은 빠르게 IT화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조선업은 역사가 오래되어 전통적으로 도면을 문서로 보관했는데 비해 우리는 뒤늦게 뛰어들어 경쟁을 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도면을 디지털상태로 보관했지요. 덕분에 수주경쟁에서 빠르게 도면을 제시하면서 일본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조선업 공정의 대부분은 용접이고, 선박용접은 자동차와 달리 자동화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점이 저가 공세로 추격해오던 중국을 따돌릴 수 있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용접숙련공들은 중국의 비숙련 상태의 노동자들보다 고품질의 용접을 했고(설계도면대로 블럭을 이어붙이면 용접오차가 발생하는데 이 오차가 거의 없게 용접하는 것이 핵심 중 하나라고 합니다) 중국은 건조시간과 원재료비용에서 한국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조선사들이 용접부분을 물량팀에게 맡기면서 지금 조선사에는 숙련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미 조선현장을 떠난 용접공들이 다시 조선소로 돌아갈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이 또다른 문제입니다. 결국 아무리 수주해도 더 이상 고품질로 신속히 건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중국은 과거 우리가 축적했던 기술을 확보해나아가고 있어서 우리가 비웃던 중국, 즉 수주해놓고선 건조가 지연되어 적자에 빠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원칙을 버리면 부메랑이 돌아오는 법입니다.

https://m.hani.co.kr/arti/economy/marketing/1052346.html?_fr=fb&fs=e&s=cl

지난해 여름에 비해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오래 동안 존경해온 은퇴 학자 한 분이 이것 때문에 깊은 염려를 담아 글을 쓴 것을 읽었다. 그 분과 생각이 다르다. 연휴를 이용해서 오랜만에 긴 글을 쓰려고 한다.

1. 선진국은 모두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돈을 풀어야 했다(금리인하 포함).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돈을  풀었다. 이 돈을 풀지 않았다면, 많은 자영업자들이 기아선상에서 헤매야 했을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서 이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유동성을 증가시켰고, 주식과 함께 많은 자산 가격이 폭등했다.

2. 오미크론 이후 코로나에 따른 봉쇄를 완화시키면서 돈을 많이 푼 나라일수록 유동성 증가로 인한 위기가 크게 닥쳐오고 있다. 초과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은 금리인상 밖에 없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금리인상을 자주 언급하였고 또 인상하고 있다. 우리 역시 같은 속도로 인상할 수 밖에 없다. 금리인상은 당연히 바로 자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만약 우리가 이 대열에서 이탈하면 외국자본의 급격한 탈출이 일어난다. 자본은 이자율이 높은 나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3. 이렇게 된 것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금융자본주의 때문이다. 그래서 상품이 국경을 넘을 때 부과하는 관세처럼 자본의 이동에 대해서도 국경세(토빈세라고 한다)를 부과해야만 한다. 국제사회가 이를 합의하지 않으면 무슨 말, 무슨 정책도 작동할 수 없다. 그러나 불과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불과한 자본투자 국가들이 가로 막아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4. 우리의 국가재정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세수 추계를 잘 못하는 문제가 반복되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실물경제를 모르는 전문가들이 문제였다. 코로나로 글로벌 공급망이 망가지면서 동남아에서 들여오던 부품을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야간 작업을 하면서 생산하고 있다. 당연히 세수는 급증했다.

5. 가계부채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드는 한국이야말로 돈을 확실하게 풀어야 했다. 그래야 금리 정책을 통해 유동성을 흡수해도 부도 내는 가계가 줄어든다. 당시에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하던 자들은 어디에 갔나? 그들이 바로 서민들을 수탈하여 빈부 격차를 늘린 주범이다. 결국 미국이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우리나라도 연동할 수밖에 없는데, 가계가 위기에 빠질 것이고 과거 IMF때나 금융위기 때 처럼 또 한차례 서민은 죽어나갈 것이다.  

6. 그럼에도 지금 선거판이 포퓰리즘을 염려할 수준에 가깝다는 점은 동의한다. 포퓰리즘을 염려하는 것은 대표적으로 수익자 부담인 사회보험의 수혜를 늘린다는 공약 때문이다. 사회보험은 기업과 노동자가 분담하여 부담하는데, 마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처럼 오해하고있다. 경기 효과가 불균형 상태인 지금, 이런 비용을 늘이면 어려운 기업은 더 심각하게 위기에 빠진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최초의 인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에덴이라는 곳에 하나님과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뱀의 꾀임에 빠져 선과 악을 구별할 능력을 주는 선악과를 먹어서 에덴에서 좆겨났다는 이야기. 여기까지는 상식처럼 알려진 신화이다. 모든 신화가 그렇듯이 이 기록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가치관이 탐구의 대상이어야 한다.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되자, 가인은 스스로 선과 악을 구별하여 질투심에 눈이 멀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죄를 짓는다. 그러나 판결은 하나님의 몫으로, 가인은 세상을 유리하는 자가 되게 하는 벌을 주고 그러나 도중에 만나는 자들이 가인을 추가로 체벌하지 못하도록 표를 주고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의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인과 같은 자가 또 나타난다. 라멕이라는 자이다. 그는 가인처럼 살인죄를 짓는다. 그러나 처벌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보호하는 판결(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라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도 스스로 한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로 부인이 둘이었던 자로 아마 당시에 가장 힘이 있는 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힘이 있는 자여서 죄를 짓고서 죄를 정하는 것도 본인이고 그 죄를 처벌하거나 보호조치를 취하는 것도 본인이다. 요즘 김학의 사건을 처리하는 소위 사법고시 출신들의 하는 짓이 딱 그거다. 공소시효를 넘기도록 시간을 끌고, 누구나 확인 가능한 영상을 보고도 확정할 수 없다고 판결하더니 급기야는 해외출국금지조치가 불법이었다고 당시 수사담당자들을 수사에 착수한 그들 말이다. 큰 범죄가 작은 범죄를 단죄하는 이 풍경이야말로 창세기적 관점에서 보면,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결과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그 어떤 권력도 독점하도록 허용하면 안된다.

금리를 사실상 제로금리(기준금리 0.5%)에 묶어두고, 한은총재가 친절하게 빚투를 경고했다고 한다. 가소롭다. 일본처럼 아주 서서히 몰락하는 길을 선택하고 국민에게는 경고만 하면 된다는 것인가?

제로금리가 장기화되면 시장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실한 놈이 가장 바보다” 열심히 일해서 저축을 하면 모은 돈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될 것이란 기대는 사라진다. 처음에는 과소비로 나타난다. 한동안 극성을 부렸던 명품소비가 그것이었고,학생들을 시커먼 롱패딩 열풍이 지배했던 것도, 좀더 자란 후에는 누구나 외제차 브랜드에 목숨걸던 것도 그 결과이다.

그런 돈이 흘러다녀 소위 유동성이 커진다. 유동성이 커지면 무조건 투기광풍이 부는 법이다. 이는 시장경제의 불문률이다. 처음에는 부자들만 투기에 뛰어들지만, 제로금리가 계속되고 부자들이 투기로 돈번다는 소문이 돌면 누구나 빚내서 한탕하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부는 정부대로 발권은행으로부터 차입을 겁내지 않는다. 국가채무비율이 웬만큼 높아봤자, 제로금리에서 문제될게 없다고 믿게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돈이 기업의 투자로 흘러들어간다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는게 문제다. 발권으로 유동성이 더욱 커지면, 기업들도 본업이 아닌 투기에 돈을 부어넣는다. 한국 부동산의 70%이상이 법인소유라는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이렇게 본업에 투자시기를 놓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한국경제는 골병이 든다. 경기부양책으로 재정을 투입하면 할수록 국가채무는 늘어나고 유동성은 커져서 투기만 증가하는 악순환. 원인은 바로 제로금리에 있다. 국가 및 가계부채가 증가하면 금리를 올리고 싶어도 못올린다. 모두가 부도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기본은 이것이다. 개인은 노력해서 번 돈을 저축으로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경제생활을 누린다. 저축한 돈은 기업이 대출을 받아 투자에 사용하고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물론 이자율 이상의 수입이 가능한 일에만 투자하기 때문에 좀비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 모든 과정에 금리가 역할을 해야 한다. 다시 자본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78965.html

2000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잠시 머무르던 대학에 중국 대학에서 방문한 교수가 있었다. 그는 중국을 지긋지긋해 했었다. 너무 인구가 많아서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바로 그 인구덕분에 10-20년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끝내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남는데 성공했다. 경제적인 이유만 따지면 그는 아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한겨레에 실린 아래 기사는 전문가가 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노란 형광줄을 그은 부분을 중심으로 하나씩 짚어본다.

1.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중국의 성장동력이 급속히 탄력을 잃고 있다’ 당연하다. 2008년 위기때는 전세계의 주요경제국가들이 국가채무에 빠져있었고, 오직 중국만 국가채무가 없는 나라였다. 사회주의국가여서 대외채무가 없었고, 중국에 투자된 자금은 부채가 아니라 선진국 기업들의 FDI였기 때문이다. 대신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당연히 서방국가들은 중국에 손을 벌렸다. 이는 마치 2차세계대전 후 유럽국가들이 미국에 손을 벌려 시작된 ‘마샬플랜’ 시기와 같다. 그 때와 다른점은 당시는 오직 서방국가들끼리 거래가 이루어졌으나 2009년 당시에는 아시아국가가 돈을 풀었다는 점만 다르다. 마샬플랜 당시에도 미국내에는 이 기사와 같은 비판들이 있었지만, 결국 미국은 세계 유일의 강대국가가 되었다. 만약 중국이 당시에 폐쇄적인 정책을 썼다면, 한동안 세계 경기는 회복되지 못하고 아마 자기만 아는 돈벌레라는 비난을 들었을 게다.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때 일본이 그렇게 혼자만 살겠다는 정책을 보였고 결국 선진국 중 가장 높은 국가채무를 안고도 나아지는 것은 없는 위기국가가 되었다.

2. ‘급속한 성장은 임금상승으로 이어져...(중략)...중진국 함정의 그늘이다’ 우선 중진국 함정이란 없다. 미국처럼 세계경제의 절대적인 강자는 후발국가들을 통제할 힘을 갖는다. 바로 시장의 힘이다. 제조공장 역할을 하는 나라의 경제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 나라를 배제하고 다른 나라로 제조공장 역할을 옮겨놓음으로써 배제된 나라는 중진국 함정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임금만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미국의 주류 경제학이 요구하는 착시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임금 인상이 전혀 다른 경제적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중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는 그 목적이 중국을 시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오직 생산기지로 보는 입장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투자지역은 모두 중국의 해안지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륙의 농촌인구가 모두 연안도시로 몰려나와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일으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서북공정’, ‘동북공정’이었다. 즉 먼저 연안의 경제발전을 꾀하고 이를 서북, 동북 지방으로 확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성공하지 못했다. 해외직접투자는 앞서 말한 이유로 연안지방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정책이 노동법개정이었다. 임금인상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쟁의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개정을 통해 연안지방의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다. 결국 연안의 기업들 중에 저임금을 목적으로 들어온 기업들은 제3의 국가로 이전하거나 내륙으로 이전해야했고, 이후 내륙의 임금이 더욱 빠르게 상승하여 연안과 내륙 사이에 임금과 지역소득 격차가 축소되었다.

3. ‘중국 당국이 의욕적으로...(중략)...쌍순환 경제전략의 복병은 극심한 빈부격차이다’ 안타깝지만 이 말과 반대로 빈부격차 때문에 쌍순환이 가능하다. 빈부격차의 한 형태인 지역간 임금격차는 노동법 개정 이후에 축소되고 있다는 점은 이미 말했다. 내수견인의 경제성장은 다양한 수준의 상품을 공급할 능력에 있다. 한국처럼 작은 나라는 전국민에게 같은 수준의 상품을 공급한다는 환상(현실은 절대로 불가능하다)이 가능하지만, 인구 14억의 나라에서는 그런 환상조차 품을 수 없다. 대형 국가들은 각 소득 수준에 적합한 가격과 품질의 상품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미국은 이를 해외생산을 통해 해결해왔다. 중국은 더욱 다양한 품질과 가격 수준의 상품이 필요한데, 중국은 이를 해결할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 그리고 이는 적당한 수준의 빈부격차를 통해 가능하다. 다 같이 잘사는 나라는 불가능하다. 그런 나라에서는 자본주의가 작동하지않으며,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다 같이 못사는 것만 가능하다. 따라서 빈부격차를 줄이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빈부격차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4. ‘중국사회주의가 미국자본주의 수준의 불평등을 용인’ 두 나라는 정치체제는 다르지만 모두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했다. 그리고 불평등은 시장경제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이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경제학자들이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사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나는 약간의 공황상태를 경험하고 있는데, 이는 기본소득이라고 부르는 이슈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로 인하여 국가채무가 급증하여 문제가 될 정도로 기본소득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또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선별적 지급도 겸하였다. 이것이 만약 우리가 그동안 논의했던데로 작동했다면 빈부격차가 줄어드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야했는데, 오히려 유동성이 높아지면서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 불평등 문제가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5. ‘과도한 빚을 줄이고 노동생산성을 끌어 올리’ 상호모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수단은 설비투자를 통해서 가능하다. 설비투자는 저축을 기반으로 한다. 저축된 돈이 대출을 통해 설비투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과도한 빚 여부는 저축의 규모에 달려있다. 저축을 통해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과도한 빚은 아니다.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는 저축 규모를 훨씬 넘는 투자를 위해 해외에서 돈을 빌려왔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가장 큰 잠재위기는 사람들이 저축하지 않게 만드는 제로금리이다. 아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없어졌다. 그래서 모든 자금이 부동산에 이어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는 투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978334.html

‘5중 위협’ 뚫고…중국 경제 15년 만에 2배로 키울 수 있을까

중 공산당 100주년 14차 경제개발 시작

www.hani.co.kr

 

한국사회가 겪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출산율 감소에 따른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있다. 적정 수준의 인구증가에 맞추어 구축된 모든 시스템이 붕괴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학교가 줄어들고, 산업현장은 구인난에 허덕이며, 산부인과는 문을 닫는다. 세계에 유래가 없는 한국형 비극의 원인이다.

이러한 출산율 하락의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경제적 부를 위해 쉬지 않고 일만 해온 국민들이 경제성장으로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부를 갖게 되자 자신의 인생이 중요해졌고, 이는 저출산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과거에 오랫동안 지속해온 산아제한 정책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산아제한 정책이 왜 문제일까?

 

 

이 산아제한정책이 무슨 이유인지 인구감소가 심각하게 우려될 때조차 유지되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첫 번째 그림은 우리나라 가임기 여성의 합계출산율을 표시한 것이다. 인구대체 수준의 합계출산율은 2.05명으로 본다. 즉 여성이 평균적으로 가임기간(15~49세) 동안 출산하는 자녀수가 2.05명이 되어야 현재 인구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수준에 도달한 것은 1983년이었다. 즉 1983년부터는 산아제한 정책이 아니라 출산장려정책을 펼쳐야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추세는 이미 오래전부터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예측을 해볼 필요도 없이 명확한 일이었다.

게다가 저출산율은 그 효과가 누적적이기 때문에 합계출산율 2.05에 도달했을 때는 효과적인 정책전환에도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왜냐 하면 평균 출산율을 높게 만든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층이었고, 청년세대는 출산율이 이미 1.0 수준보다 크게 높지 않았기 때문에 평균이 2.05에 도달한 것이다. 즉 1980년에 가임기에 들어선 여성들이 2000년경에 이르면 40대 가임여성이 되고 그 세대 이후 여성들이 모두 같은 추세를 보였기 때문에 2000년대에 도달하면 출산율은 1.2 수준으로 낮아졌던 것이다. 그리고 누적효과에 의해 합계출산율은 계속 낮아지기만 한다. 그게 지금 1.0에도 못 미치는 출산율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두번째 신문스크랩(경향신문 1996.6.5일 자)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산아제한 정책은 1983년을 지나고도 무려 14년이 지난 1997년에야 비로소 폐기된다. 출산장려도 아니고 그저 산아제한 정책의 중지였다. 그 사이에는 심지어 3번째 자녀가 태어날 때는 의료보험 혜택도 주지 않았을 정도로 야만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지금 모든 시스템의 급격한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그 붕괴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는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가 7-8%에 불과하다는 현실로 나타났다.(일자리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황세원선생이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라는 좋은 책을 냈다. 일독을 권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운영했던 보건복지부 퇴직 공무원들은 나라 꼴이야 어떻든 수백만 원의 연금을 받으며 편하게 잘살고 있다. 

이 시기에 나라를 망친 또 하나의 정책은 고등교육기관의 무분별한 신설이었다. 전국의 지방 유지들은 지역 국회의원들을 끼고 엄청나게 많은 대학을 신설했다. 1985년 236개였는데, 1995년 305개로 무려 69개가 증가했다. 인구감소가 분명하기 눈에 보였던 1983년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물론 당시에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큰 폭으로 떨어진 출산아 수를 감안하면 불과 10여년 후에 대학 진학가능자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게 뻔한 상황에서 대학을 무분별하게 늘려왔던 것이다. 지방에 대학을 신설허가해주면서 서울의 주요 사립대학들이 지방에 분교를 설립하도록 허용했다. 이 정책은 지금 보건복지부가 SS병원, HA병원을 위해 의료전달체계를 망가뜨려온 것과 닮은 꼴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입학자원이 감소한다고 다들 걱정하던 시기였던 2000년대에도 대학 신설을 계속되어 지금은 370여개의 대학이 있다.(아래 그래프는 대교연의 2013년 보고서에서 인용)

 

 

그 뒤로 지방 특히 소도시에 위치한 대학들이 문을 닫고 있다. 남원의 서남대학이나 군산의 서해대학은 표면적으로는 대학비리로 문을 닫은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1990년대에 인구를 세어보지도 않고 진행한 대학정책 때문이다. 당시에 대학설립자들은 놀고 돈버는 수단으로 인식하여 창업한 것이지 교육이란 것은 관심이 없었다. 이런 일이 지방 정치인과 결탁하여 진행되었다. 지금은 아예 세금으로 대학을 설립하겠다고 한다. 서남대학 창업주에게 돈이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학의 수는 전체 고등학생이 대학을 진학해도 채울 수 없었고, 국립대학 정원을 줄여서 결과적으로 난립한 대학들이 학생을 받기 쉽게 도와주기도 했다. 여러개의 대학이 문을 닫았지만, 아직도 대학교의 수는 줄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 때는 고등학교 졸업생의 9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기도 했다. 원서만 내면 합격하니까. 지금도 소수의 대학을 제외하면 모든 대학들이 아우성이다. 서남의대 정원이 줄어든 것을 감사해야할 정부가 새로운 의대를 설립한다고 나서고 지역 국회의원들은 원래 있었던 정원을 복원하는 것이라고 논리를 주장한다. 바로 그 정치인들과 교육부 관리들은 수백만원의 연금을 받으며 잘 살 것이다.

참여연대가 홍보하는 카드뉴스를 보았다. 인구감소가 사실이지만, 노인인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의사의 필요가 늘어나 인구감소를 염려하는 주장은 거짓이라는 취지였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좋은 역할을 해오던 시민단체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의 사회문제를 만들어내는 시한폭탄을 두자는 주장을 서슴치 않는다. 노인이 되면 의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이미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했고 이런 추세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진입했다. 어떤 정책으로도 인구 감소를 피할 수 없다. 지금 늘어난 의대생이 사회에 나오기까지는 15년~17년이 소요되는데 인구는 현재보다 100만명 이상이 감소한다. 문제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인구감소는 누적효과가 발생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다시 출산가능한 사람 수가 줄어 더 빠르게 감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한창 의사로 생계를 이어갈 시기인 2050년에는 현재보다 500만명 이상이 감소한다. 의사가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기간이 25년 정도 되는데, 2060년 인구는 지금보다 천만명이 감소한다. 더 큰 문제는 그 동안 통계청의 예측보다 더 빠르게 인구감소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지금은 언발에 오줌눈다고 당장은 환영받겠지만, 결국 우리의 짐을 후손에게 전가시키기는 원자력발전과 다를 게 없다. 지금은 싼값에 전기를 펑펑 쓰지만, 우리 후손은 그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1차원적인 주장들에 대해 일부 경제학자들 조차 지대이론을 가지고 같은 말을 하고 있어서 다음 글에서는 지대이론을 왜 적용하면 안되는지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며칠 후에 올리고, 나와 상관없는 의료문제에 대한 글을 마치려고 한다)

 

 

 

 

 

고성군의 의사부족이 의사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세뇌방송이 계속된다. 안타깝다.

전북 김제시에 등록된 2018년 신생아 수는 450명이다. 이들 중 일부는 지역거주자에게 혜택을 주는 입시제도와 복지혜택을 노리고 등록한 사람들도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전원 김제시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의 출산을 도와줄 산부인과는 1일 8시간 3교대 근무를 해야만 한다. 아기가 알아서 주간에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와 간호사 등등의 인력이 3교대 근무하는 병원의 운영에는 연간 인건비만 5억이상, 최소한 10억이 든다.

이를 450명의 신생아수로 나누면 한 아이당 출산비용은 최소 2000만원이 든다. 실제로 내가 20년전 마국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미국에서 병원 출산비는 정상분만일 때 2만 달러였다. 하물며 고성군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말 이런 국가를 꿈꾸는가?

의사 수가 부족해서 고성군에 의사가 없는게 아니다. 당연히 공공의료인 보건소를 통한 초기 대응 후 인근 도시의 큰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문제는 보건소 조차도 일부는 도심에 있다. 지금 정말 의료사각지대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도심에 깔아놓은 보건소를 면 단위 이하 지역에 인력과 시설 추가에 사용하라고 외쳐야 한다. 병원이 넘쳐나는 도시에 공공의료시설을 추가해놓은 이유가 뭘까? 불가사의이다.

다만 공중보건의 자원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의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면서 군복무를 마치고 입학한 학생이 늘었던 때문이고, 이제 다시 대부분의 대학이 의과대학으로 편제를 바꾸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금방 해소된다. 물론 전문대학원을 도입한 것도 의대의 결정이 아니라 정부가 강제로 그렇게 했던 일이다. 당시에도 의대들은 모두 반대했다. 반대이유 중에 가장 큰 것 하나가 바로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서였다. 어린 학생들은 나름대로 숭고한 뜻을 가지고 진학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나름대로 다양한 의사를 길러낼 수 있는데 직장생활을 하다가 오는 학생들은 기본적인 출발점이 안정적인 직업만이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걸 밀어붙인 사람들이 누구였는가?

왜 정부가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대책을 논의해야 할 일을 정치인들의 표 획득을 위한 엉터리 정책을 내걸고 국민을 세뇌시키는가? 실제로 3주전 한 도시가 발전전략을 토론하는 자리에 토론자로 초대받아 참여했는데, 발표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공공의대 유치가 화두가 되었었다.

오늘 전교조를 법외노조라고 한 정부의 조치가 불법이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반가운 일이다. 모든 노동자는 노조를 만들고 노동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 1980년대에는 일반 노동자들이 이를 자각했고, 1990년대에는 교사들이 이를 자각했었다. 2020년대에는 각종 전문직들이 이를 자각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전공의들이 스스로 노동자성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교수들이 노조를 준비중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가 진보해 가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 정부는 의료개혁 4대정책을 발표했고, 의사들, 특히 전공의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의협회장의 돌출성까지 더해져서 의사들은 순식간에 온 국민에게 ‘공공의 적’이 되었다. 정치적 수사까지 더해져서 이 상황은 정치적선전만 난무하고 이성적인 토론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의료를 생명을 다루는 공공서비스라는 주장은 넘쳐나지만, 공공서비스의 기본 요건조차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다. 애당초 의사집단과 협의없이 코로나를 틈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보건복지부의 시도는 적어도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되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 돌아온다. 지금이라도 늦지않았다. 근본을 살펴야 한다.

어느 국가나 모든 지출을 국가의 재정으로 하는 공무원이 있다. 이들은 단 1원도 스스로 투자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하는 일은 국가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단했을 때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파업권리를 제약한다. 특히 군인과 소방관에게 이런 제한이 강조된다. 국공립학교의 교원들은 모두 공무원이다. 국공립학교는 아무도 투자한 사람이 없다. 전액 세금으로 지어지고 유지된다. 급여도 세금으로 지급한다. 그래서 교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전교조가 이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고초를 겪어야 했던가? 그러나 지금은 정부가 ILO협약에 따른 핵심쟁점사항에 관해 법률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교사뿐 아니라 공무원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것도 핵심쟁점사항이다.

반대편에 민간서비스가 있다. 민간서비스는 사업자가 모든 투자를 한다. 자신이 투자하고 시장의 원리에 따라 고객을 유치한다. 정부 가이드라인이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서비스의 댓가는 서비스 제공자가 정한다. 서비스의 품질에 따라 고객이 많으면 올리고 적으면 내리는게 일반적이지만, 사업자에 따라서는 사업의 목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학원이나 과외교사는 자신이 투자하여 세운 학원에서 경쟁력에 따라 한 달에 수백만원을 하는 과외부터 불과 수만원짜리 학원 강좌를 운영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아무리 교육이 중요해도 사교육을 공공서비스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공공서비스가 있다. 공무원이 직접수행하지 않지만 국가가 제공해야할 중요한 서비스를 민간이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서비스제공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세금으로 하고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도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진다. 원래 이런 서비스들은 국가가 제공하던 것이 아니고 민간에서 먼저 수요를 발견하고 민간서비스로 제공하던 것을 나중에 여러가지 이유로 국가가책임지게 된 것이다. 정부도 아닌데 공무를 수행하는 복지기관을 포함하여 산하기관들이 그런 것들이다. 사립학교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사립학교들은 설립자가 투자하여 학교건물을 짓고 등록금을 공립학교와 달리 비싸게 받으며 교육서비스를 제공했다.

의무교육을 도입하려고 보니 사립학교가 제공하는 민간서비스를 공공서비스화 해야만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교원의 월급과 기타 서비스제공에 필요한 교과비용을 국가가 전적으로 지급했다. 여기에 비례해서 사립학교 등록금도 없애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육시설(건물 포함)이 노후화 되자 이제는 이런 시설비용도 국가가 지급한다. 그렇지만 처음 설립할 때의 투자를 인정해서, 비록 논란은 있지만, 아직도 인사권을 포함한 모든 경영권을 학교재단 이사회가 행사한다. 이렇게 우리사회는 민간서비스를 공공서비스로 바꿔온 경험이 풍부하다.

지금의 의료는 어떤가? 많은 뜻있는 사람들의 희망과 전혀 다르게 개인병원들은 100% 민간서비스이다. 자기가 투자해서 병원을 열고 환자가 오지 않으면 망한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민간서비스이다. 투자하고 자기가 책임지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인기가 있어서 아무리 환자가 많이와도 진료비를 올릴 수 없으니 죽으나 사나 오는 환자를 다 진료해야 한다. 환자가 적어지길 바라는 의사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도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국민건강보험 때문이다. 우리 보험제도는 정부에게만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도이다. 사실 미국과 캐나다가 양 극단의 의료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는 그 사이에 위치한 합리적인 제도이다.

이 좋은 제도가 정부만 좋고 국민의 원성을 사는 이유는 진료에 대한 댓가가 원가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개인병원의 의사들은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만 소득이 유지된다. 그래서 환자는 언제나 의사를 만나서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오랫동안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대학병원은 전공의를 노예로 만든다. 주당 80시간노동에 인수인계 시간은 아예 노동시간에 잡히지도 않는다. 인수인계는 앞서 근무한 자가 다음 근무자에게 환자의 상세를 설명하는 일로 의료수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버티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총 15년 이상 걸리는 이 과정을 빨리 끝내고 개업해서 돈이나 벌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정책에 앞서 해야할 일은 의료수가의 현실화이다.

지금 이 사태. 정부가 의사들을 협박하고 의사들은 파업하는 사태는 결국 국민들만 골병들게 만든다. 언론사들은 진료공백으로 응급환자가 사망했다고, 수술이 지연되고 있다고 아우성이지만 정부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모두가 일을 벌인 정부가 아니라 의사를 원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면 정말 극단적인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왜 그 좋은 경험, 민간서비스를 공공서비스화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다지도 무식하게 싸움만 하고 있는 걸까?

공공서비스화 하는 과정은 매우 단순하다. 정말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면 지방에 공공병원을 지으면 된다. 병원의 설립부터 운영까지 모든 책임을 국가가 지면 된다. 정부가 이렇게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실제로 공공병원은 일산에만 지었다. 왜 그럴까? 지방에 공공병원을 지으면 세금먹는 하마가 된다는 것을 가장 잘아는게 보건복지부이고 아마 이 문제가 기관평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공공의료는 절대로 지방에 혜택이 가지 않을 것이다. 또 다시 수도권을 위한 정책일 뿐이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했을 때 다들 비난만 했지 왜 폐쇄했는지에 대해서 대책을 논의하지 않았는데, 진주시 정도의 규모로도 공공병원을 유지할 만큼 인구가 안되는게 현재 한국의 의료전달체계이다. 그러나 공공서비스라는 것은 원래 세금으로 하는 것이다. 사실 진보는 원래 소수이다. 왜냐하면 공공서비스를 높이려면 국민이 싫어하는 세금 인상을 주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대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세금을 올려야 하는 정책을 주장할 수 있을까?

공공병원 다음 단계는 민간병원의 의료인 급여를 포함해서 운영비를 국가가 책임지고 대신 진료비 보험화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모든 진료의 보험화는 문재인케어의 정신이다. 보험화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제도가 주치의 제도이다. 모든 국민은 가까운 개인병원을 주치의로 등록하고 환자는 응급이 아닐 경우 주치의에게 진료를 받게 하고 만약 더 큰 병원에 진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판단되면, 진료소견서를 써주고 스케쥴을 잡아준 병원으로 가서 진료받게 하는 제도이다. 의료전달체계라는 말로 표현하는 주장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이게 안되는 이유는 소위 서울의 거대병원들 때문이다. 지방에서 수술을 받지 못하는 것도 의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거대병원들 때문이다. 전국에서 돈되는 환자를 싹쓸이 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만약 주치의를 거쳐서 전문가의 판단을 거쳐서 대형병원으로 가야한다면 지방대학병원들이 정상화될 것이고 이는 곧바로 이들의 수입저하로 나타난다. 이를 허용하겠는가? 지방대학병원에도 수술할 의사가 일할 수 있으려면 충분한 비용을 지급하고 주치의를 통해 구태여 서울로 갈 필요가 없는 환자들이 지방에서 치료받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구가 적어도 병원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캐나다처럼 월급제로 하거나 혹은 미국처럼 완전히 시장경제에 맡기면 국민이 불만을 가지는 1시간 기다려서 5분 진료받는다는 문제는 바로 해소된다. 하루에 20명 이상을 받지 못하고 한 환자당 30분을 진료하는 의료천국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월급을 주는 대신 진료환자수를 제한하거나 돈을 받고 싶은대로 받게해서 몇명만 진료해도 돈벌이가 충분하거나.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이것은 보건복지부의 공무원들이나 정말 지 밥그릇밖에 모르는 국회의 정치인들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진짜 생명이 중요하고 의료가 중요하다면, 의료를 공공서비스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치킨게임의 피해자는 국민이다.

 

 

코로나19로 빚어진 여러 가지 문제들은 상당 부분은 불편함의 일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편함을 넘어서는 문제이면서 그 영향이 장기화되는 문제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경기침체일 것이다. 당장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비정규직의 해고가 심각하다. 한국의 통계는 확인되지 않지만, 미국은 올 3월 둘째주말 기준으로 실업자수 증가 폭이 2017년 허리케인 하비가 덮쳤을 때 일시적으로 증가한 실업자수에 육박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정부가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과정은 상당 부분 정형화되어 있다. 경기선행지표인 재고의 증가나 투자의 감소가 나타나면, 시차를 두고 경기동행지표인 소비의 감소와 생산활동의 부진이 나타난다. 따라서 정책 당국은 정책수단을 마련하여 경기침체가 나타나는 것을 완화시킬 기회가 있다. 보통 이자율 인하를 통해 투자를 유인하는 정책을 사용한다.

문제는 이번 상황에서 이자율 인하정책이 적확하게 작동할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고증가와 투자감소라는 선행지표의 징조와 소비 및 생산 감소라는 동행지표의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서 전통적인 정책수단이 완벽하게 기능할 수 없다. 이자율 인하는 이자 부담이 늘어나 고통을 겪는 사업자들의 부담을 경감시켜줄 수는 있지만 투자유인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선행지표 및 동행지표의 동반하락이라는 이 상황의 미래 불확실성 때문이다. 일상적인 경기후퇴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지금의 경기후퇴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어야 가능하다.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이 부분, 즉 코로나19 사태가 조기에 종식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 있다. 중국과 한국의 질병확산과정을 보면, 두 나라의 대응 시기와 방법이 서로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4-5개월 정도의 순환을 거쳐 안정기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다른 국가들이다. 대응 시기는 중국처럼 늦었고, 대응방법은 한국의 방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선진국들이 4-5개월 이상의 순환을 따를 수밖에 없고 이는 코로나19 상황이 가을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서 겨울이 오면 결국 이 상황은 내년 여름이 되어야 비로소 정리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자율을 인하하면, 사내유보금이 많아서 현금흐름에 위기가 없을 것이 분명한, 일부 기업들의 선제적인 투자를 유도할 수는 있지만, 대다수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에게는 이자부담만 줄여주는 효과에 머무를 것이다. 다시 말해, 그 효과로 볼 때 경기활성화정책이 아니고 복지정책의 성격이 강하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법인세 감면을 시행하면, 기업들에게 늘어난 유동성을 내부에 비축하는 용도로 사용할 뿐이고 투자의 증가나 고용의 증가의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낮다.

또 다른 문제는 미국의 상황에 있다. 미국도 코로나19 사태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서 국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 필요한 엄청난 자금은 보통 TB라고 부르는 재무성채권을 통해 조달할 것이다. 이 TB는 전통적으로 한중일 3국이 주요 구매국가였다. 그러나 이 한국과 중국이 미국보다 먼저 코로나19 사태로 경기침체에 빠져 한마디로 내 코가 석자이다. 게다가 두 나라가 TB를 구입해서 미국에 유동성을 제공해도 이 유동성이 한국과 중국의 대미 수출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무작정 여기에 동참 할 수는 없다. 최근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9개 국가와 서둘러 통화스왑협정을 맺은 것은 바로 이 부분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한국에 TB를 떠넘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현재로서는 재난기본소득이라고 회자되는 저소득층 지원정책이 거의 유일한 정책수단으로 보인다. 이 정책이 갖는 의미는 긴급구호성격의 복지정책이면서 동시에 소비를 끌어내는 수요증대정책이다. 즉 선행지표의 악화에 대응하는 정책으로서 공공사업을 통해 돈을 지급하고 소비를 끌어내는 전통적인 정책의 변형이다. 다만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사용할 수 없고 특히 일시적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실업의 문제를 모두 공공사업으로 대응하려면 전 국토를 다 뒤집어 놓아야 할 터이니, 직접 돈을 지급하여 이 특수한 위기를 대처해보자는 것이다.

다만 누구에게 어떻게 지급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타이밍과 수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대상이 비정규직이지만 이들 중에서 해고된 사람이나 영향을 크게 받은 자영업자를 선별하여 지급하는 것은 그 시간과 선별비용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경남지사가 주장한 방안은 참고할 만하다. 모든 국민에게 신속히 지급하고 일정 기준 이상에게 지급된 기본소득은 세금으로 환수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선별지급보다 기본소득의 취지에도 더 가깝다. 특히 기업들이 기본소득으로 지급한 금액만큼 임금을 삭감하는 부작용도 줄이려면 법인세 감면이 아니라 오히려 감면 특혜를 줄이고 더 철저히 거두어야 한다.

 

골드만삭스가 추정한 미국의 일시해고 규모. 업종을 보면 우리도 참고할 수있을 것 같다


송기균경제연구소?
경제나 연구소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통계를 살펴보고 글을 쓰는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

"위 댓글에서 매우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서민과 빈곤층의 세금을 뜯어서 건물주의 주머니로 넣어주는" 정책을 선거를 앞두고도 버젓이 실행하겠다는 집권당의 배짱이 놀랍다. “
2013년 기준으로 빈민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하위 20%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서민에 해당하는 4분위 소득자의 조세율은 0.28%에 불과하다.(이상 김낙년교수 계산) 그러니까 임대료 삭감액의 50%를 보상해주는데 사용하는 조세는 최소한 서민과 빈민층이 낸 세금은 아니다.

“자영업 경기가 극도로 침체되어 건물의 수요가 감소해서 임대료를 인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줄곧 오르기만 하던 임대료가 실로 몇 십년 만에 하락하자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해주겠다고 한다.”
지금의 자영업 하락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태도 역시 높은 임대료 문제에 집착하다가 빠진 함정이다. 지금은 코로나때문에 발생한 비상 상황이다. 한발 양보해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해도, 임대계약 기간 동안은 가게를 유지하려면 계약한 임대료를 내야 한다. 이분 말대로 자연스러운 상황이면 먼저 자영업자가 망해서 문을 닫아야 한다. 약자가 먼저 죽어야 임대료가 인하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동안 잘 해왔기 때문에 이 시기만 넘기면 되는 자영업자들도 이 시기에 임대료 부담으로 부도를 내게 되면 진짜 서민 자영업자들도 빈민층으로 전락한다.

자영업자에게는 기껏 이자율 인하의 혜택(이자율이 낮아서 별 동움이 안된다는)을 주면서 건물주의 호주머니에는 현금을 찔러준다고도 했다. 부럽다. 빚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0.1%만 낮아도 정신이 번뜩 든다. 내가 컨설팅해주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모두 임대료 1%를 낮추기 위해 사력을 다 한다. 게다가 차감해주는 반액은 세금감면으로 돌려주지만, 자영업자는 2배를 즉각 현금으로 혜택을 받는다. 또 반액을 보전 혜택을 받는 건물주는 먼저 인하를 해줘야만 한다.

정말 이런 말을 하고 싶으면, 오히려 마스크 등을 사재기해놓고 가격을 올리는 자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부당이득을 환수해 서민경제를 위해 사용하라고 요구하는게 낫다.

물론 임대료가 너무 높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대응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비상상황에도 자영업자가 다 죽어나가야 가능한 임대료가 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성적이지않다. 최소한 연구소라는 이름을 걸고 할 말은 아니다.

문제의 글

http://m.pressian.com/m/m_article/?no=280898#08gq

미국의 제조업 활동지수가 2009년 6월 이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미국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이 10%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별로 걱정을 안한다고 한다. 그러나 제조업이 위축되면 공급사슬을 통해 다른 부문에도 영향을 준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경제의 1/3이 제조업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결국 금년에 두드러지고 있는 제조업불황은 미국경제를 불경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몇년전 정부의 한 부처에서 직원대상 4차산업혁명에 대한 강연을 요청받아 한 적이 있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한 분이 매우 강하게 어필했다. 산업구조가 4차산업혁명으로 서비스화 되고있는데 구태의연하게 제조업을 강조하냐는 취지였다.

답변할 기회를 주지 않고 마무리되었는데, 당시에 많이 걱정스러웠다. 제품의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 서비스화하면 더 빨리 망한다. 서비스화의 상징인 롤스로이스 조차도 터덕거리는데... 제조업이 붕괴되면 서비스산업의 상당부분도 동반몰락한다. 공급사슬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조업의 제품경쟁력은 모든 경제의 근간이다.

https://www.industryweek.com/supply-chain/note-economists-manufacturing-s-downturn-more-critical-you-think

몇 년 전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의 딸이 장애인 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했고, 거기에 불법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처음 이를 보도했던 뉴스타파가 인터넷보도윤리심위위원회인지 뭔지의 제재를 받았다. 이때도 쟁점은 부모의 명시적인 개입이 있었는가였다.

아무튼 심의위의 제재와 함께 모든 인터넷 기사에사 이 내용은 사라졌다. 명시적인 불법을 밝히지 못하면 딸의 인권은 보호 받아 마땅하다. 다음 포털을 검색해보면 관련 기사가 얼마나 깨끗하게 삭제되었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얼마전 법원이 당시의 제재가 잘못이었다는 취지의 판결을 냈다. 그래서 관련기사는 한달쯤 전에 판결내용을 소개하는 기사만 검색할 수 있다. (무시가능한 소수를 제외하고)

나는 나경원도 조국과 같은 공격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사실 임기가 정해진 법무부장관과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제1야당의 대표중에 무엇이 더 무거운 자리인지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제발 정략적이거나 혹은 도덕적 우월주의(뭐 진짜 도덕적인 사람은 보기 어렵지만) 때문에 우리 다음 세대가 열어가야할 새로운 세상에 똥덩어리를 투척하지는 말자.

여기에는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고 그래서 재산처럼 잘 관리해서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비난받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능력이 있거나 성공한 사람들이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능력이 없거나 실패한 사람들일 뿐이다. 가치관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딸의 인격은 존재할 자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 더 급하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에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이 미친 시스템과 사고를 바꾸는 일 말이다.

지소미아 파기에 관해 여러 의견이 있나보다. 일부 우려도 있다고 한자. 그래서 지소미아 파기가 의미하는 것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지소미아는 기본적으로 한미, 미일 군사협정을 통해 삼각 관계로 해결해오던 군사정보교류를 한일간에 직접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2. 심지어 과거에도 한일간에 필요한 경우 직접 정보를 주고 받았다.
3. 그래서 지소미아는 마치 무역에서 화이트리스트와 같은것으로, 개별 승인을 포괄승인으로 바꾼 것에 비유할 수 있다.
4. 문제는 시작할 때부터(이명박정부는 2012년 비밀리에 이를 추진하다가 나중에 발각되어 협정체결 1시간 반 전에 취소되었다. 이후 박근혜정부가 2016년에 전격 체결했다) 아직 해소되지않은 한일간의 식민지지배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었다.
5. 게다가 이는 일본의 한국침략을 가속화했던 가쓰라-태프트밀약처럼 미국이 동아시아 지배 군사력을 일본에게 부여하는 출발점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 시기에 황교안총리는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6. 그런데 일본의 무역에서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있었고 일본이 제시한 그 근거가 문제였다. 한국은 전략물자수출에 있어서 외부 반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다고 했던 것이다.
7. 이 논리는 그 보다 더 예민한 군사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반도체는 경제문제이지만, 군사문제는 국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더 위험하다.
8. 그래서 군사정보교환에서 화이트리스트 배제, 즉 지소미아 연장을 중단해야 했던 것이다.

자유무역을 주장하던 경제학자의 주류는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넘어갔었다. 둘다 자신들의 경제력이 힘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미국을 기준으로 이미 1970년대 들어서면 IT분야에서는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다른 부문에서는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현상이 나타나더니 1980년대부터는 노골적으로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다. 보호무역주의는 필연적으로 영미 두 나라 자신들에게도 부메랑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있는 두 분야, 금융과 IT를 무기로 경제강국을 유지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주장했고 다른 국가들이 쉽게 동의하지 않자 FTA협상을 통해 조금씩 목적을 달성했다. 처음엔 나프타협약으로 시작해서 결국 최종 완결본은 한미FTA였다. 두번째 IT분야는 지적재산권을 매개로 압박했다. 즉 자신있는 분야는 개방을 요구하면서 자신없는 분야는 반대로 보호무역을 도입해왔다.

문제는 이런 방법으로 중국을 제어하기는 곤란했다는데 있다. 그래서 트럼프는 전방위적으로 자유무역을 부정하고 나섰다. 금융과 IT가 시스템의존적이어서 일단 체계에 편입되면 보호무역주의를 택하고 싶어도 막을 방법이 없는데 비해 상품무역은 상대적으로 쉽게 시장을 닫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과거에 일본이 미국의 이런 조치에 당했고 그때 수혜자는 한국이었으며, 한국이 당했고 그때 수혜자는 중국이었다. 그리고 지금 중국이 당하고 있다. 인도가 부상하는 것은 새로운 수혜자가 인도가 된 것일 뿐이다. 다음 그림은 맥킨지의 경제심리조사 결과이다. 지난 1년 사이에 세계적으로 보면 인도의 무역량이 크게 증가했고 아시아태평양지역은 급격히 감소했다.

미국의 전략적 목표가 너무 뻔한 지금, 한국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의 수혜자가 되는 것도 미국의 파상적인 공세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이다.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을 겪지 않으려면, 부동산버블을 끝내고, 인구감소에 대비하며, 한중관계의 질을 높여야 한다.

물론 한중관계의 질을 높이는 데 있어서 핵심 고리는 남북관계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대통령의 남북, 북미관계 개선 노력은 한국의 장기적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나선형 악순환과 선순환의 갈림길: 사드와 한국 위기의 구조

 

웰스(Wells)2009년 자동차산업이 겪고 있는 위기의 나선형구조(Crisis Spirals)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기업이나 산업이 나선을 따라 상향이동(upward positive feedback loops)하기도 하고 하향이동(downward negative feedback loops)하기도 하는데, 일단 상향 혹은 하향의 국면에 들어서면 여러 가지 현상이 상호작용하여 그 방향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모형이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가 최근 수개월 동안 목격했듯이 북·미간의 발언 수위는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 모형의 적용 범위를 국가로 확대하면 나선의 개수가 늘어나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그리고 국가경영의 정책목표는 이런 나선 중에서 좋은 나선은 상향이동하게 만들고 반대로 나쁜 나선은 하향이동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크게 보아 두 개의 나선이 상호영향을 주며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경제의 나선이며 다른 하나는 외교의 나선이다. 이 둘은 완전히 맞물려 있어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순간 국가는 위기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한국의 경제나선은 이미 하향순환에 돌입했다. 인구구조 때문이다. 노령인구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은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하나는 모든 노령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자산을 보유해서 투자 여력을 가진 계층이다. 두 번째 특징은, 그러나 소비는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노령자들이 일정한 소득이 없기 때문에 소비를 할 능력이 취약한데다, 자산을 가진 노령자들조차도 연금이나, 저축, 부동산 등의 자산이 장차 자신이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질병 등을 위한 보장보험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노령자들은 소비를 급격히 축소하게 된다. 반대로 도전을 하면서, 소비를 주도하여 새로운 경제 활력을 만들어내야 할 청년계층은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화는 이런 현상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지금 이런 하향순환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해외시장에서 국내로 유입되는 소득(수출이나 자본배당금)을 늘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이나 비정규직 철폐, 혹은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정책들이 소비를 활성화하여 이런 하향순환의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후자의 정책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잠식하기 때문에 수출의 감소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의 경쟁력이 임금에 의존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지적은 유효하다.) 따라서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자본의 몫을 떼어서 이를 소비활성화 정책에 투입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대타협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의 하향순환은 오히려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외교나선이 꽉 맞물려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한미FTA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자본은 상당부분 이미 미국자본이 차지하고 있어 사회적대타협의 범위가 국내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의 무역거래는 상당부분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수출경쟁력을 잠식하지 않는 사회적대타협은 미국의 자본가라는 우리의 정책 범위를 벗어난 그룹이 포함되어 성공하기 어렵다. 미국의 북한 위협이 높아지면 주식시장이 출렁이다가 미국이 발언수위를 낮추면 다시 진정되는 것은 바로 해외자본이 영향을 받기 때문인데, 이 자본의 국적이 미국이어서 미국은 자본시장의 추이를 읽어가며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존의 수출시장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하는 처지인데 이는 중국의 결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경제나선의 하향 순환을 반전시킬 수 있는 자율적인 정책수단이 별로 없는 외교정책의 문제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복잡한데, 우리에겐 남북문제라는 수십 년 된 문제도 안고 있다.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이 원하는 것은 체제안정성 보장이라는데, 북측은 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언제나 긴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선을 돌리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재래식 전쟁 위협을 실천에 옮겼다. 서해교전이 대표적인데, 이때 고 김대중 대통령은 금강산유람선을 중단시키지 않아 북측의 도발을 무력화했다. 북측은 이후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긴장강화의 나선을 미국을 향해 강화시키는 전략이다.

 

북측의 이런 행동으로 나쁜 나선은 더욱 가속적으로 상승되는데, 즉 한··일은 이를 핑계 삼아 중국을 압박해왔다. 제주강정 해군기지는 중국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재래식 군사시설인데다 북측의 무모한 행동 때문에라도 모호성을 유지해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드배치부터는 더 이상 모호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중국정부는 일관되게 외교적 수사뿐 아니라 경제적 보복의 수위를 조금씩 높여왔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절묘한 중립지대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국경을 맞댄 국가들에 대해서는 국경분쟁의 형태를 띠긴 했지만,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정책을 펼쳐왔다. 베트남, 인도 등과 그러했고, 내부 문제이긴 하지만 국경지역에 속한 티베트에서도 그러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남북한을 완충지대로 두고 상대하기 껄끄러운 미·일과 직접 맞대면 하는 것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중국이 완전히 세계 제1의 강대국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이런 구조를 유지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미·중간의 상호견제와 지정학적 특징을 잘 활용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기회를 삼아야할 것이다. 중국과 직접 맞대면 하게 되었을 때의 지정학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도 현재의 구도는 유리하다. 통일은 한반도에 대한 이해를 가진 국가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동안 북·미는 전략적으로 명확화정책(평화협정을 맺고 체제안전을 보장하라는 요구, 핵개발 프로그램을 불가역적으로 완전히 폐기하라고 요구)을 택해왔고, ·중은 전략적모호성(강정기지에 대해 함구하거나 대북제재에 소극적으로 반응,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을 유지하는 정책)을 견지했다. 그러나 중국이 21세기판 마샬정책이라 할 수 있는 일대일로정책을 발표하거나 사드배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서방세계가 중국에 돈을 구걸하러 찾아오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반증이며 더 이상 전략적모호성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우리 정부가 모호성을 버리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정부 초기 지금의 한국당 및 바른정당의 전신이었던 야당이 요구한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하면서부터이고, 이명박 정부에서 금강산관광중단, 박근혜정부에서 개성공단 폐쇄 등 우리도 긴장강화쪽으로 나선을 돌려왔다. 여기까지는 남북문제였지만, 박그네정부가 사드를 배치하면서 이는 더 이상 남북문제가 아니라 한중문제로 확장되었다. 즉 모호성을 버려온 것은 지금의 야당이란 의미이다) 

 

이런 배경에서 본다면, 사드배치 혹은 더 나아가 전술핵 배치와 같은 전략자원의 한반도 전개가 갖는 위험은 분명해진다. ·미는 북측의 행동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북측의 행동을 핑계 삼아 미국의 중국포위전략에 한국이 첨병으로 나섰다고 분노하는 상황이 더욱 나쁜 방향으로 상승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가 더욱 더 전략적모호성으로 소나기를 피해 가야할 처지이다. 그런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레드라인을 설정하거나 공격적으로 MD방어체계의 첨단배치 기지가 되어 대북제재가 아닌 대중제재 정책을 쏟아내는 것은 위기의 나선을 더욱 상승시키며, 경제의 나선을 급격하게 하강시키는 정책이 될 것이다.

(2017.9.8.)

나비효과란 말이 있다. 어디에선가 벌어진 작은 일이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폭풍을 일으킨다던가? 드디어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어갈 첫 단추가 꿰어졌다. 환영과 우려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당연하다. 모든 일에는 환영할 부분과 우려할 부분이 있는 법이니까. 문제는 어느 한쪽면만 바라보고 찬양일색이나 비방일색인 경우이다. 나는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올 파란나비효과’(항상 기호 1번을 찍었던 성주주민들이 사드배치 이후 투쟁과정에서 어떻게 생활정치에 뛰어드는 주민들로 변했는지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 나는 나비효과 중에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나는 것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와 함께 놓치지 않아야 할 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말하자면 최저임금 인상의 선순환이다.

 

먼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시작하자. 전주시는 해마다 시내버스운전자들의 파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해 지자체 보조금만 200억 원이 지급된다. 복잡한 문제들이 숨겨져 있으니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다만 그 많은 보조금을 주고도 전주의 시내버스는 난폭운전과 불친절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이다. 들여다보면 이해가 된다. 이들은 하루 18시간 연속근무를 하고 대신 이튿날 쉬는 격일 근무를 하고 있다. 이런 근무조건이니 회사는 운전자를 구하기도 힘들고, 또 추가 고용에 대한 부담을 피하려고 택한 방법이다. 기사들은 기사들대로 야근수당이 더 많고 쉬는 날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더 벌기 위해 이런 극한 근무조건을 선호한다. 물론 사고는 여기에 비례해서 늘어나고 시민들의 불만도 늘어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최저임금이 오르면, 노동자급여가 오를 것이다. 정부는 이를 소득주도성장으로 연결시키는데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정부의 핵심 경제정책목표이다. 그러나 이 목표슬로건은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여기에는 숨겨진 다른 파란나비효과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업들에게는 비정규직을 유지할 유인요인이 감소한다. 비정규직이란 제도는 최저임금을 주면서 제한된 기간을 반복하여 계약을 하는 방법으로 유지된다. 즉 그럴듯한 경제이론(고용유연성)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저임금이 핵심 고리이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면 이런 동기가 감소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느니 차라리 자기 공간에 갇혀 살아가겠다는 자발적 폐쇄증후군도 줄어들 것이다. 산업구조조정도 중요한 효과이다. 저임금 노동에만 의존하는 산업이나 공장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낮은 임금은 이런 산업이나 공장들이 전환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고용구조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저임금 구조이기 때문에 고용에서 이탈한 사람들은 부모나 다른 도움에 기대어 영세자영업자가 되어 전체 고용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OECD국가의 평균보다 10% 이상 높으며, 세계에서 4~5위일 정도로 높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높이면 자영업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감소하여 자영업도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게 된다. 물론 야근수당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고용은 증가한다.

 

자본 측면에서는 어떤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까? 지금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가 상가 건물을 올려서 세를 받는 것이다. 자영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넘쳐나고 세입자 중에서 대박을 내는 사람이 나오면 즉각 세를 올려 그 수익을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영업 희망자가 줄어들어 건물을 올려도 빈 점포가 늘어나면 더 이상 조물주 위에 군림하는 건물주가 될 수는 없다. 새로운 자본 투자처를 찾아야하고 자본의 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로 이런 꿈같은 파란나비효과는 최저임금인상 만으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을 것이다. 첫째는 사업자들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몇 년에 걸쳐 인상해야 한다. 이미 정부가 적절하게 발표했듯이 영세업자 보호를 위한 조치도 함께 가야한다. 기간은 최저임금 인상은 3년에 걸쳐서 보호조치는 5년 정도가 적당하다. 계속 보호조치를 하면 산업구조조정이나 자영업 억제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며, 정부의존형 영세산업만 키워놓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간을 정해 놓으면 스스로 혁신하는 사업체와 포기하는 사업체가 분리될 것이다.

 

두 번째, 보호조치의 대상을 30인 이하라는 경직된 기준을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30~40인 사업장에서 집단 해고를 통해 30인 이하로 맞추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보다는 종사자수에 따라 점진적으로 보호의 혜택의 크기를 줄여가는 누진체제가 더욱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음식업자의 재료 구입에 대해 보조금을 주는 방식은 그 대상을 우리 먹거리로 제한함으로써 FTA 등 국제 무역환경에 대해 대비하는 정책으로 도입하는 게 더욱 바람직해 보인다. 또 카드수수료 인하조치 뿐 아니라 금융권의 역할을 더 찾아보아야 한다. 우리 금융권은 그동안 권력의 비호 아래 고수익을 올리면서 다른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이었다고 믿는다.

 

세 번째로 고민해야할 점은 직종이나 산업별 차등 최저임금제이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숙련공의 경우에는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최저임금은 대부분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기능직에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인상은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어 사업자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뿐 만 아니라,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는 숙련공 임금의 추가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이나 선순환효과가 작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민해봐야 한다. 특히 대기업의 임금인상은 자본가의 몫이 증가하는 것과 함께, 중소 하청업체의 임금인상 억제요인이다.

 

마지막으로 고민할 점은 노동시간의 문제이다. 장시간 노동은 사업자뿐 아니라 일부 노동자들의 이해와도 맞물려 있어서 줄이지 못하고 있었던 측면이 있다. 이를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이는 노동자의 건강권과 일자리 나눔을 위해서도 최저임금인상과 같이 가야할 중요한 정책이다.

 

최저임금인상이 우리 경제를 멍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파란나비효과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2017.7.17.)

2018 지방선거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지방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지방선거는 2018613일 전국 동시선거로 치러질 예정이다. 모든 선거는 중요하다. 게다가 최근 보도된 바에 따르면 문대통령은 이 선거일에 헌법개정에 대한 찬반을 물을 수도 있다고 했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대규모 선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현실화되지 않는다 해도 지난 59일의 대통령선거 이후에 치러지는 첫 공식선거라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선거이다. 촛불대선이 갖는 의미를 지방으로 확산하는 중요한 선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선거의 의미를 새겨보고 마음과 행동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5.9 대선은 지난 9년 동안 빚어진 주요 문제들에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시위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킴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정부는 그렇게 국민의 염원을 담아 출범했다. 생각해 보라. 이명박 정부는 3대 비리(4대강 파괴, 자원외교를 빙자한 외화 손실, 방위 사업 비리)를 통해 나라를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국가로 만들었으며, 박근혜 정부는 황당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무능한 고집으로 나라의 기반을 송두리째 뽑아버렸지 않았던가? 세월호 침몰사고, 문고리 삼인방의 국정농단, 국정 전반에 걸친 최순실의 불법 개입 등 정말 입에 담기도 부끄러웠던 9년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꾸었을 뿐인데, 비로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난 듯 하며, 하루아침에 뉴스 보기가 즐거운 세상이 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정부의 지난 며칠 동안을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첫째는 차별 없는 인물 발탁이다. 단순히 지역안배가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발탁함으로써 탕평이 아닌 다양성 속의 협치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대통령이 직접 지시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즉각적이고 단호한 적폐청산을 지시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난 정부가 현 정부의 앞길에 묻어둔 지뢰인 외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대통령, 피해자를 안고 우는 대통령, 그리고 검찰의 비리에 대해 단호하게 지시하는 대통령을 보았다.

 

이러한 상징적인 조치만이 아니다. 그야말로 오랜 세월 누적되어온 적폐를 풀어 나아가는데 적합한 인물들이 속속 이 정부에 합류하여 근본적인 조치도 취할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청와대는 권력이 필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권력을 적절히 사용하고, 기본적으로는 국회와의 협치를 통해 큰 틀의 정책방향 제시와 조정 역할을 담당하고 실제 업무는 각 부처가 자기책임 아래 수행하며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을 직접 상대하며 정책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바꿔나갈 전망이다.

 

이런 사회가 구현되는 것을 방해할 적은, 바로 그 당사자들인 국회, 정부부처(권력기관 포함)의 공무원들과 지방자치단체이다. 국회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것이며, 공무원들은 자기 책임을 자기 권리로 둔갑시켜 권력을 휘두르는 횡포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는 이를 감시하고 단죄해서 참여정부가 경험했던 실패를 막아야할 텐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또 언제나 권력의 중심에 따라 몰려다니는 지방토호 세력들이 창궐하여 지방에서는 지난 9년 동안의 적폐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사실 지방정치의 적폐도 만만치 않다. 지방선거 때만 되면 시·도의회 의원들은 물론이고 자치단체장 조차 시류에 따라 소속정당을 밥 먹듯이 바꾸어 도대체 그들의 정체성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자치단체장들은 이러저러한 인연(학연, 지연, 사익추구 등)이나 뇌물에 의해 공무원 승진을 결정해 문제가 되는가 하면, 마치 중앙정부의 공공기관이 그러하듯이, 자격도 없는 낙하산 인사가 기관장을 독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작 해야 할 청소년 문제(교육, 진로)나 지역주민의 행복증진을 위해서는 건전한 비전이나 정책 제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자신의 선거를 위해 알맹이 없는 사업으로 도민을 속이거나 지역경제에 피해를 끼칠 결정을 저질러 놓고 물러나는가 하면, 전임자가 추진하던 사업을 뚜렷한 이유 없이 추진하지 않아 투자자와 도민을 고통 속에 버려두는 일도 다반사였다. 군산의 예를 몇 개만 들자면, BTL하수관거사업은 그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사법기관의 모르쇠로 마땅히 책임져야할 자들이 여전히 지역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가 하면, 가치가 낮은 야외수영장을 짓겠다고 재정을 낭비했고, 대학병원 분원을 짓겠다며 온갖 분탕질을 해대다 결국 시민의 반대에 부닥쳐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다.

 

지방선거는 바로 지역에서 이러한 적폐를 근절하고 지역정치에서 다양성을 진전시키는 데 적합한 사람을 발굴하여 지방정치에 진입시키는 기회이다. 이 기회를 통해 지역정치와 지역주민의 삶을 바꾸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런 권리와 의무를 잘 준비하려면 앞으로의 1년이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일 것이다. (2017.5.24.)

※이글은 <시민의 도시> 6월호에 동시에 실립니다.

차기 대통령과 싸드 배치

 

이번 대선에는 많은 이슈들이 있다. 당연히 세월호 희생자들이나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있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짐승이 아닌 사람의 태도로 이 문제에 접근하여 분명하게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제일 먼저 거론해야 할 것이다. 또 촛불시민의 요구로 터져 나온 적폐청산도 있다.(나는 이 용어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소위 수구세력이 보수라는 가면을 쓰고 저질러 놓은 4대강 사업과 같은 잘못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여야 하는데 수구언론의 단결로 전혀 엉뚱한 것을 적폐라고 몰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듯이 말이다) 최근 미국 부통령이 거론한 한미FTA 개정문제도 갑자기 새롭게 이슈가 되었다. 천안함 진실 규명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이글에서 의견을 말하고 싶은 싸드배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싸드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정리해 보자. 이미 그 방어체계의 모순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으므로 생략한다.


1.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이 사실은 주권국이 아님을 온 천하에 공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오랜 동맹국이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점 때문에 미국의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와 장래에 우리의 전략적 입지를 재조명하고 들어줄 일과 들어주지 못할 일을 구분해야 비로소 주권국가이다. 만약 오랜 동맹국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로 하면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국과 더 오랜 동맹국이었다.


2.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이 탄핵되어 부재중이며 대통령선거를 위한 공식 유세기간인 지금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성주의 골프장을 공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군사독재정부나 할 짓을 한 것이다. 외교와 국방의 최고 책임자가 부재중인데 군부가 제멋대로 위법논란을 무시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회는 군사정권일 경우이다. 이 시기에 설치를 강행하는 미국의 태도는 동맹국의 태도가 아니라 우리를 모독하는 매우 모욕적인 행동이다. 칼 빈슨 항공모함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거짓공표를 해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까지 했다.


3. 경제적인 문제도 있다. 지금 많은 기업과 국민들이 중국과의 교역이나 비즈니스에서 곤경을 느끼고 있다. 왜 한국을 방어하는 데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무기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국민을 곤경에 빠트리는가? 설사 우리를 방어하는 무기라 해도 그 부작용과의 무게를 따져서 결정하는 게 정상적인 국가이다.


4. 외교가 실종된 결정이다. 설치를 결정하고자 할 때 우리에게 중요한 국가가 정면으로 반대할 때는 이를 우회하거나 유화하기 위한 조처를 만들어가는 게 외교이다. 외교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전쟁을 부추기는 아베 수상의 오만한 도전적 발언을 자초한 것이다.


5. 국방부가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 속에서 싸드 배치를 서두르는 이유 역시 문제이다. 다음 대통령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중에서 결정될 분위기에서 두 후보가 모두 싸드 배치에 부정적이라는 점이 고려되었을 수도 있다.(안 후보는 최근 찬성으로 돌아섰다) 싸드는 다음 정권을 무력화하는 지뢰가 될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은 당연히 싸드를 반대하는 유권자들의 지지 속에서 탄생하게 될 터인데, 싸드가 이미 진행되고 있으면 대통령은 이를 중단시키기도 곤란하고 그대로 두면 반대했던 지지자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닥쳐 시작부터 지지기반이 없는 식물정권으로 전락하게 된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염원과 달리 지나간 10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새로운 5년이 된다는 말이다. 이는 마치 고 노무현대통령이 대북송금이라는 지뢰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시작부터 핵심 지지세력의 이탈을 불러와 결국 새누리당(한나라당)과 연정이라는 해괴망측한 제안까지 하게되는 상황으로 몰린 것과 같을 것이다.


사실 일단 외교적인 결정을 한 다음에는 중요한 상황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다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 결정을 번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 중국, 북한에서 상황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상황변화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 유일한 수단이 바로 국회이다. 국회가 이를 중단시키면 된다. 그리고 차기 대통령은 민의를 수용하여 중단하면 된다. 대통령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지금 반대를 당론으로 하고 있는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이 공동으로 이를 추진하면 된다. 싸드 문제의 해결방안은 오직 국회만이 가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 관해서는 내 입장을 미리 밝혀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찌보면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께 무례한 행동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의 생각을 알고 대화하는게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 여당이 지난 8년간 무슨짓을 했는지는 뭐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선서때만되면 쇼를 해서 다시 지지층을 결집하는 기술 외에 정치도, 행정도, 무엇하나 정상인걸 찾아볼 수가 없다.

더민주당(이름에 다시 민주당을 넣은 것 하나만 쓸만하다)은 그 숱한 기회를 주었어도 만년 2등 자리를 즐기며 새누리와 술잔을 높이 부딪히는 또 다른 여당이다. 이대로는 절대로 2등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이 잡겠다고 불피웠더니 빈대가 튀어 나와 심기를 어지럽힌다. 더민주당에게 제대로 야당좀 하랬더니 더 꼴통당이 등장했다. 이게 다 호남사람들의 묻지마 투표행각의 자업자득이다. 제3의 여당. 국민의 당.

사실 정의당이 맘에 들어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야당을 만드는 선거여야 한다. 그래도 야당같은 맛을 내는 정당은 정의당이니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야당이 뿌리조차 사라질 절대절명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야당을 지켜주려는 마음에 발목잡혀서 별로 야당 같지도 않은 민주당에 일편단심 표를 주었는데 이제 그만 손털 때가 된 것이다.

남은 찌끄레기들(그리스도 없는 기독자당, 고김대중, 박정희 대통령을 팔아먹는당-이사람들이 친박연대를 패러디한 코미디라 해도 별로 재미없다) 중에 그래도 키워보고 싶은 당중에 하나는 녹색당이다. 그래서 둘이 합해서 녹색정의당이라도 만들면 좋겠지만 어디 정치하는 사람들 욕심이 그리 쉽던가...

나는 살면서 내가 판단하고 주장했던 일들이 10~20년 뒤에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하며 살아왔다. 예지력이 뛰어나다는게 아니고 시대를 모르는 바보라는 뜻이다. 그럼 또 어떠리. 맘이 통하는 친구를 한 세대가 지난 뒤에 만난다해도 행복 아니던가?

그런데 때늦은 감기몸살로 이시간까지도 이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