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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World!/짧은여행 긴여운:자유버마

군사정부의 새로운 사기극 발표

군사정부의 새로운 사기극 발표
2월 9일 밤 그리고 2월 13일 오후

우리 일행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DPNS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들은 후 8시 30분 쯤 DPNS사무실 앞에 있는 한 태국식당을 찾았습니다. 아직 저녁식사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태국 음식을 시켜놓고 나누어 먹기 시작합니다. 태국 음식이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방콕에서도 그랬는데, 보통 중국음식처럼 요리를 몇 가지 시켜놓고 나누어 먹다가 마지막에 밥으로 배를 채우는 방식이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한사람, 우리를 태우고 왔던 차를 운전했던 젊은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물으니 일이 있어 먼저 갔다고 대답할 뿐입니다.

그런데 린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매우 심각한 표정이 됩니다. 그리고는 아무리 식사를 하라고 재촉해도 식사 생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며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도 고팠고 태국음식이 입에 맞는 편이어서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렸던 린은 중요한 뉴스가 있다며 말을 꺼냅니다. 순간 내 머리 속엔 불길한 생각이 피어오릅니다. 사실 사무실에서 DPNS에 대해 설명을 들을 때 1995년 이곳 메솟의 난민촌까지 버마 군대가 밀어닥쳐 난민들을 무차별 학살했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하는 염려를 하면서 린의 입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염려했던 나를 비웃듯이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린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지만 엉뚱한 걱정을 하고 있었던 내게는 다행스럽게도 가벼운 일(?)이었습니다.

군사정부인 국가평화발전위원회(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 SPDC)가 저녁 8:00에 중요한 뉴스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2008년 5월 18일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국민에게 직접 개헌에 대한 찬반의견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SPDC는 이 국민투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 2008-2009년 중에 개헌작업을 마무리 하고 2010년에 총선거를 치르겠다고 합니다.

새 헌법이 담게 될 주요 내용은,
1) 국회의원의 25%를 SPDC가 직접 임명한다.
2)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에는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군부에 넘겨준다.
3) 헌법의 개정은 군부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4) 외국인과 결혼했거나 자녀가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출직 공직자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등입니다.

이 항목들 중에서 4번째는 야당 지도자이자 유력한 대선 후보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정치 활동을 봉쇄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치 여사의 남편은 영국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새 헌법안은 민정이양이라기 보다는 군정을 영구화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린에게 슬며시 의견을 묻습니다.

Q: 이렇게라도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면 민주화의 첫 걸음을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A: 만약 SPDC가 진정으로 민정이양의 뜻이 있다면 1990년 투표결과에 승복하고 당장 민정이양을 해야 한다.

Q: 1990년에 이미 국민투표에 승리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승리할 수 있지 않을까?
A: 천만에, SPDC는 절대로 민주적인 투표를 할 리가 없다. 이런 투표를 하겠다는 것은 이미 지난 번 패배의 경험에 기초해서 불법선거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Q: 무엇이 걱정인가? 유엔 감시 하에 자유 총선거를 추진하면 될 것 아닌가?

사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은 13일 방콕에 나와서 방문했던 Altesian-Burma의 간사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감바리 유엔특사가 아세안 국가들을 공식 초청해 버마에 대한 아세안의 브리핑을 요청했으나, 아세안 국가의 하나인 버마의 반대로 아세안이 거부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감바리 유엔 인권특사가 지난해 버마를 방문해서 성과없이 끝났고 지난 1월부터 버마군사정부의 허락 하에 버마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버마 정부가 이유 없이 이미 허락한 방문 일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유엔은 버마에서 전혀 힘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예상은 전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감바리 특사가 계속해서 유엔감시하의 국민투표를 요구했지만 군사정부는 끝내 거절했습니다. 심지어는 사이클론 나르기스의 엄청난 피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투표에 참석할 수 없는 가운데 군부는 5월 10, 24일 강제로 투표를 실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또 한 차례 군사정부의 사기극은 자연재해조차 혀를 내두르게 하며 진행된 것입니다.

사이클론 피해로 시체가 즐비한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아세안은 듣지도 않는 독재자 탄웨에게 느긋하게 설교 중이라는 만평 -버마난민들의 저항신문 이라와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