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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음악*사진&생각

아아, 윤이상

독일에서 활약한 세계적인 작곡가 고 윤이상(1917~1995) 기념사업이 국가정보원의 제동으로 무산될 처지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경남 통영시와 통일부, 윤이상평화재단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북한에서 제작한 윤이상 흉상의 반입과 윤이상의 육필 악보 전시사업 등이 국정원의 개입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 (중략) ... 지난해 6월 인천항에 도착한 고인 흉상의 반입 신청을 통일부에 했으나, 통일부는 지금껏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 ... (중략) ... 통일부 관계자도 “반입 승인과 관련해 관계기관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제시돼 반입 승인을 내주기 어렵게 됐다”며 사실상 국정원이 반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또 윤이상의 육필 악보를 비롯해 동백림(동베를린) 사건 관련 자료를 ... (중략) ... 전시할 계획이었으나, 국정원의 개입으로 이 계획도 무산됐다고 윤이상평화재단 쪽 관계자가 밝혔다. ... (하략) ... (한겨레신문 2010.2.17)

윤이상선생님은 1990년 분단 뒤 처음으로 남북한 연주자가 서울과 평양을 오간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주도했습니다. 그는 지난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이라는 누명을 쓰고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강제 납치돼 모진 고문과 수형생활을 했으며, 1995년 11월3일 끝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고향 땅을 밟아보고 싶었던 그분께 우리 정부는 사과와 준법서약을 요구했고 그분은 거부하다 끝내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했지요. 그리고 그 현실은, 위 기사를 볼 때 아직도 변한 것이 없는 셈입니다.

내가 선생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했던 형이 윤선생님을 뵙기 위해 무작정 찾아갔다가 자기처럼 윤선생을 알현(!)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음악가들이 너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포기하고 돌아왔던 적이 있다는 말. 두 번째는 생전에도 그의 생일에 전 세계 40여 나라에서 탄생축하 음악회가 열렸고, 서거하셨을 때는 80여 나라에서 추도음악회를 열었다던 어느 글.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임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그분은 아직도 이름조차 거론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고향인 통영에서 그분을 추모하는 음악제를 열고 있지만 1회만 이름이 ‘윤이상국제음악제’였고 2회부터는 ‘통영국제음악제’로 바꾸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적어도 음악계에서 대한민국 전체를 걸어도 윤이상이란 이름 하나의 가치만 못한데도 말입니다.

세 번째 기억은 내가 아는 한 20세기 최고의 여류수필가인 루이제 린저가 대담 형식으로 그분의 자서전을 썼다는 사실입니다. 20세기 최고 지성인의 하나로 꼽히는 그녀가 자서전을 써주었다는 사실 만으로 나는 또 한 차례 그분께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대담을 통해 조국에 대해서, 그리고 선생님의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음악에 별로 자질이 없는 나도 깊이 빠져들 정도로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한국의 현대사의 한 단면을, 혹은 그분의 음악세계를, 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진정한 지성인 애국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그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한번 읽었으며, 이후 윤이상평화재단이 그 책을 다시 출간했을 때 또 다시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은 내가 두 번 읽은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입니다.


윤이상 상처 입은 용: 윤이상ㆍ루이제 린저의 대화, 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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