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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꼬라지/정치

실패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

“나의 실패는 여러분의 실패가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일이 있고, 역사는 자기의 길이 있다. 실패한 이야기가 거름이 되길 바란다.” -고 노무현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

노대통령이 독백처럼 쓴 이야기입니다. 맞습니다. 그는 실패한 대통령입니다. 비록 내가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 급히 군산에 분향소를 설치하라고 시민연대 사무국에 말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취임 초기, 그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했습니다. 이는 남북관계를 김대중대통령 시절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지요. 그 후 걸어서 판문점을 넘어 남북정상회담까지 했지만 이런 노력과 성과는 이미 초기에 저질러 놓은 대북송금특검 때문에 퇴색해 버렸습니다. 사실 남북관계는 민족사적으로나 경제 혹은 사회적으로 매우 다양하고 큰 의미를 갖습니다만 1960~90년대를 살아 온 지식인들에게는 족쇄 하나가 풀렸다는 의미가 오히려 더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그 시절 반독재활동은 거의 모두 친북활동으로 둔갑되었고 처절한 응징이 가해졌기 때문입니다.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핑계 대며 독재체제를 유지했지요. 남북관계 개선은 그들에게 이 족쇄를 푼 것이었고, 다른 거창한 의미들은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었을 수 있다는 점을 노대통령은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결정 등을 거쳐 임기 말의 한미FTA에 이르기 까지 참여정부는 철저히 자신의 지지기반을 내치는 정책들을 너무 쉽게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노무현정부가 자랑으로 삼을만한 국가균형발전이나 지역감정 극복, 과거청산을 위한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 했습니다. 심지어는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경제적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함으로써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서 우회전 한다’는 비아냥거림 까지 들어야했지요.

그렇게 철저히 자신의 지지기반을 붕괴시키고 대신 한나라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는 단계에 까지 나아갔습니다. 지역감정해소라는 선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은 애당초 가능하지도 않은 정책이었고, 설사 그렇게 되었다 해도 수구보수세력의 지지는 절대로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노무현정부의 지지기반은 소수의 친노집단으로 한정되어 스스로 아무런 정책도 추진할 힘이 없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한나라당이 동의하는 정책만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과 반대되는 정책만 시행될 수 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는 분명히 실패한 대통령입니다.

친노신당이 거론된다고 합니다. 몇몇 인사들이 조만간 거기에 합류할 것이란 소식도 들립니다. 나는 그들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먼저 노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해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하십시오. 이런 과정 없이 다시 나서는 것은 국민들의 기억상실증에 의존하는 기존 정치인들의 행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행동이며, 고인의 사후 인기에 영합하는 또 다른 분파정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