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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의대정원과 밥그릇 싸움

어느 나라든 다 그들의 제도는 그 나라의 총체적인 시스템 안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학자들이 외국의 제도를 공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우리도 그것을 그대로 배워야할 것처럼 말하면 멍청하거나 나쁜 학자이다. 우리가 그런 제도를 도입하려면, 그 사회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평가하고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를 말해야만 한다.

참여정부시절 유럽, 특히 영국의 지역혁신전략을 배워야한다고 했었다. 당시에 나는 그러한 외국제도를 연구해야했었다. 결과는 허무했다. 그들의 제도는 그들에게 적합한 것이었지 우리에게 적용하기에는 그 근본 자체가 달랐다. 그러나 당시 잘나가는 학자와 정부는 무조건 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결국 지역거버넌스는 요식행위만 남은 제도로 전락했다.

박근혜정부 때는 창조경제를 한다고 했다. 지역마다 대기업을 시켜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었다. 초기에 나는 이 제도가 잘 작동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현장 조사를 해보고는 그냥 웃었다. 기업이 지역에 센터를 세웠으면 그 기업의 역량을 활용하여 지역발전정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전국의 창신센터가 모두 같은 일을 하고 기업은 따로 놀고 있었다. 결국 준공무원 수만 늘렸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사업을 만들어 세금을 투입하고 있다.

한때 캐나다의 의료제도를 배워야한다고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혹은 유전적 질환을 가진 아이가 어떻게 키워지는지를 찬양했다. 실제로 나는 한국에서 제대로 생활할 수 없는 유전질환을 가진 아이가 캐나다로 이민 가서 교사가 된 분을 만났었다. 그러나 내가 캐나다에 가서 살면서 발견한 현실은 조금 달랐다. 돈이 좀 있는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미국으로 건너가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요즘은 아예 쿠바의 의료제도를 찬양하는 특집기사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인구밀도가 도시 중심으로 극단적으로 높고 농촌인구가 사라진 우리나라, 그것도 이미 세계 10대 경제국가인 우리와 쿠바는 아예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쿠바의 시스템은 우리가 다시 1960년대로 추락한다면 배울만한 제도이고,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배워야할 제도로서 연구대상은 된다. 그리고 해외여행지로 호기심유발용 까지만이다. 그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

모든 제도는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기 때문에 돌봄과 의료수준은 한쪽이 강화되면 반대쪽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다. 경제학적으로 둘다 향상시키는 방법은 새로운 자금의 투입만으로 가능하다.

무슨 이슈만 터지면 밥그릇싸움이라고 공격하는 언론이나 ‘지대이론(rent)’ 들고 나오는 경제학자들의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지대는 단순하게 말하면 땅을 빌려주고 받는 임대료이다. 땅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빌려 사용하는 자들에게 높은 임대료를 통해 노력없이 착취하기 때문에 나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단 하나도 예외없이 지대를 추구한다. 노력하여 얻은 것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업들은 지대를 확보할수록 경영을 잘했다고 칭찬받는다. 그래서 부동산투기처럼 나쁜 지대가 아니면 어느 사회나 오히려 지대추구를 권장한다. 특허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지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사회가 발전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업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돈벌이가 안되면 노력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것이 공산주의가 실패한 근본 원인이다.

그래서 지대가 발생하려면 반드시 충족해야하는 필요조건이 바로 시장경제이다. 수요공급에 의해 가격이 자율적으로 결정되어야 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거나 국가가 정해놓은 가격으로만 거래 혹은 임대하도록 하면, 지대가 발생하지 않고 부동산투기는 사라진다.

지금 한국의 의료제도가 그나마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도로 평가받고 오바마대통령이 배우려고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민간의료여서 국가의 자금 투입은 거의 없는데, 의료서비스가격은 아예 지대(밥그릇싸움)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도록 국가가 정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의사들은 이 제도에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다시말해, 의대정원증가 문제를 밥그릇싸움이라고 하려면 의료수가를 시장에 맡겨서 지대가 발생할 조건을 만들어주거나, 의료투자를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져서 의료서비스(의사가 아니라!!!)를 공공재로 만들어야 한다.

이말은 현재 우리가 내는 세금을 최소한 50%내지 두배로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 추진하면 부자들은 해외로 나가서 치료받고, 일반 국민은 중병에 걸리면 이게 다 운명이려니 생각하면서 그냥 죽는 사회가 된다. 물론 사소한 질병들에 대한 서비스는 더욱 좋아진다. 의사를 만나는 시간이 30분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고, 느긋하게 대화도 하고 히히덕거릴 수도 있다. 이것도 일종의 풍선효과이다.

그러나 어쩌랴. 새만금이 전북의 희망이라고 속였던 정치인들 덕분에 타협의 여지는 사라지고 정치인들은 새만금을 팔아서 먹고사는 것처럼, 언론은 여기에 맞장구치면서 광고를 받아먹고 사는 것처럼, 여기에서 후퇴하고 타협하면 곧 죽을 것처럼 살벌하게 으르렁거리 현실처럼. 아무도 진실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돌팔매질만 하는 우리 의료의 미래가 결국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의료를 영리수단으로 전락시킬게 뻔한데, 지금도 나라를 대표하는 두 병원은 사실상 영리병원인데, 지금 우리는 스스로 숭고한 정신으로 무장된채 신자유주의자들의 선전전에 동원된 꽃놀이패이다.

그런데 사람인 의사를 공공재라고 주장하는 유물론자가 국회의원을 하고 있고 의사를 아예 사람이 아닌 재화라고 규정하는 법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이 미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생명을 물질취급하는 모순된 주장을 신념을 가지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