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희랍어시간, 한강, 2011,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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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시간은 한강이 쓴 장편소설이다. 먼저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강연, “빛과 실”에서 일부를 옮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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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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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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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중략)…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중략)…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중략)…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네번째 소설인 <바람이 분다, 가라>까지는 살아남기 위해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탈출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다섯번째 소설, <희랍어 시간>은 폭력적인 세계 한 가운데에서 연하디 연한 순 같은 존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줄거리는 장편소설 답지 않게 단순하다. 한 인문학 아카데미의 희랍어 시간에 만난 두 사람, 희랍어를 배우는 여자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강사인 남자가 의지하고 지지하는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소설에서 희랍어는 중요한 상징이다. 인류 중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 수동태·능동태 외에 중간태까지 갖춘 정교한 언어여서 유럽인들도 배우기 어려워하는, 그러나 사라진 언어. 오직 그리스 시대의 철학서적을 읽을 때만 필요한 언어이다.
여자는 열 일곱 살 때 처음 실어증에 걸렸을 때 낯선 불어 단어를 배움으로써 말을 되찾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20년 만에 다시 말을 잃었다. 이혼한 뒤 혼자 키우던 아이를 소송 끝에 전 남편에게 빼앗겼고 예민한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엄마마저 여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낯선 언어, 희랍어를 공부한다.
10대 때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해외 근무를 따라 독일로 간 남자는 두 문화의 균열 속에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곳에서 안과의사의 딸과 잠시 조우하기도 하지만, 내성적인 그는 외국인이란 이유로 늘 남의 눈에 띄는 자신의 처지가 싫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 느낀 해방감은 자신이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독특하게 뛰어난 희랍어 실력을 가졌지만, 부계 유전으로 점차 시력을 잃어간다. 그는 안전을 지켜주는 가족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고 희랍어를 가르친다.
각자의 세계 속에 갇혀 살아가는 두 사람. 한 사람은 실어증으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극도로 피한다. 다른 한 사람은 시력을 잃어가고 있어 오직 부치지 않은 편지로만 다른 사람과 대화한다. 이 두 사람에게 희랍어 수업은 유일하게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시간이다. 이런 두 사람이 다른 학생들은 모두 결석한 날, 아카데미 건물 안으로 날아든 박새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을 통해 접촉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 사이에 따스한 감정이 오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육체적 제약 때문에 연한 순 같은 두 사람에게 밀려들었던 삶의 폭력은 무력화된다.
(2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