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읽기/느헤미야묵상

느헤미야를 꿈꾸며 6

怪才 2009. 2. 17. 14:02

느헤미야의 지도력에 겁이 난 주변 민족들은 느헤미야를 죽이는 일을 구체적으로 추진합니다. 불러내서 죽이는 방법을 시도했지요. 그러나 성을 다시 세우는 일에 바쁜 느헤미야는 그들의 속셈을 알고 응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술책은 느헤미야가 반란을 꾀한다는 소문을 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힘 있는 지배자 페르시아를 자극함으로써 느헤미야가 겁먹고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느헤미야는 기도합니다. 내 손에 힘 있게 하시라고.

얼마 전[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군요]에 미군 장갑차가 여중생 둘을 치어 죽인 사고가 있었지요. 미군은 안하무인으로 버팁니다. 그들의 행동을 우방군대가 아닌 점령군대의 행동인 듯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밝히고 잘잘못을 따져야 할 일인데도 자꾸 덮으려고만 합니다. (이건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란 잘잘못을 밝힌 뒤에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과 보수 인사들 중에서 미국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반미가 되어선 안 된다는 논리지요. 우리 느헤미야처럼 기도합시다. 우리의 손에 힘이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서 그러니까 입 다물라는, 성을 재건하지 말라는 협박으로부터 자유 하는 힘을 달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이젠 유다의 선지자들을 매수합니다.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오늘 밤에 그들이 널 죽이러 올 테니 성전의 외소에 가서 문을 잠그고 있자고 합니다. 한마디로 독안에 가두겠다는 것이지요. 느헤미야가 어떻게 이 유혹을 이겼는지 아십니까? 그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함정인줄 알고 가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백성을 생각했기 때문에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나 혼자 살겠다고 숨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원통하고 화가 나겠습니까? 그래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비방이 두려워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았습니다. 느헤미야의 생존법칙, 그거 멋있지 않습니까?